어린 시절 친분이 있던 글라주노프의 [교향곡 5번]과
모음곡 [라이몬다] 등의 작품과 스크랴빈의 [교향곡 4번 ‘법열의 시’],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 [뮤즈의 신을 이끄는 아폴로],
무소르그스키의 [호반시치나]나 리야도프의 [바바야가]등의 작품도 연주하는 등
동시대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 해석에도 적극적이었다.
러시아 외 작곡가로는 베토벤과 모차르트, 브람스, 바그너, 브루크너 같은 독일-오스트리아 작곡가들도
비교적 즐겨 다루고 시벨리우스나 힌데미트 등도 연주하는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므라빈스키는 1938년부터 1961년까지 스튜디오 레코딩을 남겼다.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의 전성기의 시작으로 평가받는 1961년 이후 레코딩은
모두 제한된 횟수의 콘서트 실황으로 만든 것이다.
므라빈스키 최후의 레코딩은 1984년 4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2번] 실황이었다.
이후 므라빈스키는 본인의 모든 녹음을 거부했다.
전설로 회자되는 해외 연주여행 녹음
 첼리비다케만큼은 아니었지만 므라빈스키는 레코딩을 싫어했다.
아예 마이크의 존재와 녹음 작업 자체를 싫어하고 연주 전에는 "마이크를 모두 철거하라"고 요구하고,
녹음 후에는 "녹음한 내용을 모두 삭제하라"고 하며 관계자를 괴롭혔다.
녹음 예정이 없는 비교적 만족스런 연주 후에는 능청스럽게
"어때요, 오늘 녹음은 잘 됐나요?“(녹음했을 리가 없다는 걸 알고) 하고 물어 보곤 했다 한다.
므라빈스키는 1946년에 첫 세계 투어를 가졌다.
당시 그가 레닌그라드 필과 방문한 나라 가운데는 핀란드와 체코 슬로바키아(프라하의 봄 페스티벌)가 있었다.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에서는 체코 필하모닉을 지휘했는데,
이로써 체코 필은 므라빈스키가 평생동안 러시아 오케스트라 이외에 지휘한 유일한 오케스트라가 됐다.
상임 지휘자 재임중 므라빈스키가 레닌그라드 필 이외의 오케스트라를 객원지휘하는 경우는
체코 필 외에 드물게 소비에트 국립 교향악단(현 러시아 국립 교향악단)을 지휘한 것 말고는 없었다.
그 뒤 1956년 6월에는 서독, 동독,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여정으로 투어를 가졌다.
그 가운데 모차르트 탄생 200주년을 맞아 빈을 방문한 것은
므라빈스키의 명성이 서방에까지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약 25년에 걸쳐 외국 공연을 하게 됐는데,
1960년에 에든버러 페스티벌과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공연한 것은 이들의 유일한 영국 투어였다.
이때 녹음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그리고 오스트리아 빈 악우협회홀에서 녹음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과 [6번 ‘비창’](DG)은
지금도 동곡 최고의 명연에서 내려올 줄 모른다.
당시 포디움에서의 위엄있는 풍모와 탁월한 지휘,
큰 키로 인해 므라빈스키에겐 ‘러시안 클렘페러’라는 별명이 붙었다.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은 1946년과 1957년 미국 공연을 가졌지만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 안타깝다.
총 네 차례 가졌던 일본 공연은 지금도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그중 최초 방문은 1973년이었으며, 1984년의 서독 투어는 이들의 마지막 해외 연주여행으로 기록됐다.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의 라스트 콘서트는 1987년 3월 6일 공연이다.
이날 므라빈스키는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과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연주했다.
그 1년 뒤인 1988년 그는 레닌그라드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84세였다.
엄격한 리허설 & 므라빈스키의 인간적 면모
 음반을 들어보면 므라빈스키가 오케스트라 전체를 기술적으로 탁월하게 제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다이내믹에 대한 조절 면에서 그러한 점이 뚜렷하다.
므라빈스키는 활기차고 자극적인 지휘자였다.
음악적 효과를 위해 템포를 자주 바꾸고 연주시 관악군을 두드러지게 썼다.
베토벤 [교향곡 7번] 1악장을 느리게 연주한다든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의 피날레에서 급가속을 하는 경우가 그 예다.
므라빈스키는 매서운 눈빛에 수수한 차림으로 포디움에 나타났다.
지휘 동작은 간단하고 매우 명료했다.
이따금 맨손으로도 지휘했다. 훤칠한 장신에 어려운 악곡을 명쾌하게 해석하며
청중을 몰입시키는 카리스마가 그에겐 있었다.
지휘 기술은 매우 뛰어나 말년에는 지휘봉 없이 손의 섬세한 움직임과
날카로운 시선으로 오케스트라를 제어했다.
50년 동안 므라빈스키가 다져온 레닌그라드 필의 앙상블은
토스카니니를 연상시킬 정도로 정확한 스코어 해석과 템포 설정으로
악보 그 자체보다도 한차원 높게 표현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