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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동파랑-네이버캐스트

띨빡이 2009. 8. 26. 13:20

통영항 중앙시장 뒤편, 남망산 조각공원과 마주보는 봉긋한 언덕배기에 동피랑이라는 마을이 있다. 동피랑이라는 재미있는 지명은 동쪽 피랑(벼랑)에 자리한 마을이라는 뜻. 일제강점기 시절, 통영항과 중앙시장에서 인부로 일하던 외지 하층민들이 기거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현재 50여 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동피랑은 구불구불한 옛날 골목을 온전하게 간직한 곳. 거미줄처럼 이어진 전깃줄, 바닷바람에 펄럭이는 빨래, 녹슨 창살……. 우리가 골목에서 기대하는 모든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 하나의 시큰한 풍경을 이루고 있다. 동피랑은 최근 몇 년 사이 통영의 새로운 명소로 떠올랐다. 골목마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벽화가 그려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주말이면 카메라를 든 여행객들로 붐빈다. 신문과 잡지, TV에도 여러 차례 소개됐다.

 

 

 

철거 예정지에서 보존지구로

벽화가 그려지기 전 동피랑은 철거 예정지였다. 통영시는 애초 마을을 철거하고 충무공이 설치한 옛 통제영의 동포루를 복원하려고 계획했다. 주변은 공원을 조성할 예정이었다. 주민들은 약간의 보상비를 받고 마을을 떠나야 할 처지. 그러나 2006 11푸른 통영 21이라는 시민단체가 “달동네도 가꾸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며 공모전을 연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전국 각지에서 미술학도들이 몰려들었고 골목 곳곳마다 아름다운 벽화를 그렸다. 허름한 달동네는 바닷가의 벽화마을로 새로 태어났다.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모습이 입소문을 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 들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200~300명의 여행객이 찾는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철거된다는 말 들었을 때는 맨날 울었다 아이가. 건물은 무허가인데다 우리야 뭐 가진 돈이 있어야지. 어디로 가야 할 지 답답했지”라고 말했다. “지금이야 뭐 부족한 기 있나. 쫓겨날 걱정도 없고, 마을도 환해짔고, 사람들도 이렇게 찾아와 주니 마을에 생기도 돌고…… 좋아도 너무 좋아짔재. 이렇게 말하는 할아버지의 얼굴은 환하고 환했다. 통영시 역시 동포루 복원에 필요한 마을 꼭대기의 집 3채만을 철거하고 나머지는 보존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또한 주민의 자유로운 의지로 이사 간 집은 예술가의 활동공간으로 제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마을 꼭대기를 중심으로 대여섯 채가 개량작업 중이다. 예술이 마을과 실핏줄 같은 골목을 살려낸 것이다.

 

동피랑 골목의 시작은 중앙시장 옆 강원수산. 길은 지그재그로 언덕을 향해 올라간다. 한 굽이 돌아설 때마다 새로운 벽화가 나타난다. 커다란 고래가 그려진 벽화도 있고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그림도 있다. 온통 푸른 바다로 가득 찬 벽도 있다. 골목 중간쯤 오르다 뒤를 돌아볼 것. 푸른 통영 바다가 골목 사이로 펼쳐진다. 금방이라도 바닷물이 골목으로 밀려들어올 것만 같다. 골목을 걷다 보면 이곳 저곳에서 사진을 찍으러 온 이들과 만난다. 골목 모퉁이에서, 노랗게 칠해진 창문 앞에서, 귀여운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모두가 행복한 표정이다. 허락 없이 집으로 들어가거나, 큰 소리를 내며 떠드는 일 등 마을 주민들을 성가시게 하는 일은 피할 것. 마을 여러 곳에 벽화를 관람할 때 주민들의 생활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지붕에 올라가거나 집안을 기웃거리는 일은 삼가 달라'는 부탁의 푯말이 붙어 있다.

 

 

파고다 혹은 바그다드 카페

비탈진 벼랑에 들어선 동피랑. 그곳에는 비탈의 경사만큼이나 아슬아슬한 삶을 일구던 사람들이 살았다. 그런 만큼 가슴 먹먹한 이야기들도 많다. 김상달 할머니(80)는 동피랑에서 산 지 40년 가까이 된다. “말도 하지 마라카이. 하루 종일 여기 앉아서 배가 들어오는 걸 지켜보고 있는기라. 배가 흰 깃발을 달고 들어오면 고마 가슴이 덜컥 내려앉곤 했다 아이가. 맨발로 저 아래 포구까지 한 달음에 뛰어 내리갔지. 흰 깃발은 사고 났다는 뜻이거든. 김 할머니는 원래 중앙시장 뒤편 마을에 살았다. 할아버지는 배를 탔다고 했다. “바다가 영감을 데리갔다 아이가. 그때 영감 나이가 꼭 마흔 이었었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할머니는 동피랑으로 이사를 왔다. 바다가 잘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맨날 이렇게 앉아 바다만 바라보고 있네. 그나마 가슴 답답한 것도 좀 트이고 마음도 편해지고 그러네.

 

마을을 한 바퀴 돌다 보면 파고다 카페를 만난다. 간판만 카페이지 사실은 조그만 구멍가게다. 한 평 남짓. 과자와 음료수, 컵라면 등을 판다. 가게 앞에는 어른 서넛이 앉을 만한 평상과 낡은 소파가 놓여 있다. 커피 한 잔을 부탁하니 백태진(73) 할아버지가 종이컵에 커피믹스를 직접 타다 주신다.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이 달디 달다. “할아버지 여기 사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한 사십 년 넘었을기라. 몇 년 전만 해도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동네였어. 길이라고 해봐야 형편없었지. 자전거 한 대가 겨우 지날 정도나 됐을까. 여기 아낙들 대부분이 저기 중앙시장에서 고기장사를 했지 아마. 애들이 아랫도리를 내어놓고 비탈길을 뛰어다니고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백 할아버지 역시 벽화 그려지고 나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 좋으시단다. “아이스크림도 잘 팔리네. 가게 이름이 파고다 카페로 붙게 된 내력이 재미있다. 어느 날 가게를 찾은 누군가가 이곳을 두고 “마치 영화 속 바그다드 카페 같다”고 했단다. 이 이야기를 들은 백 할아버지는 다음날 가게에 파고다 카페라고 써넣었다. 귀가 어두운 할아버지는 바그다드 카페파고다 카페로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카페 앞집 벽 앞에 누군가 버려놓은 오디오가 놓여져 있다. 오디오에서는 한 가닥 전선이 흘러나와 벽을 타고 올라간다. 줄이 끝나는 곳에는 헤드폰이 그려져 있다. 헤드폰이 그려진 이 벽 앞에서 사람들은 꼭 헤드폰에 귀를 대어보곤 한다. 그리고는 눈을 감는다. 아마 바다 소리를 듣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을의 그림은 2년 후 다시 그려진다고 한다. 벽화가 색이 바래기 때문이다. 그때쯤이면 동피랑은 또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까. 아 참, 헤드폰이 그려진 벽화 옆에는 낡은 나무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그 옆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다. 잠시 앉아서 아침 바다를 보시소. 꼭 그래 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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