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은 작았다. 2,30여 호나 될까. 낮은 집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마을은 조용했다. 간간히 멀리서 파도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지붕 위, 오징어를 말리던 덕장은 텅 비어 있었다. 한때 이곳은 붉은 언덕으로 불렸다고 한다. 뱃사람들이 몰려 살았고 시멘트 공장과 무연탄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여름이면 생선 내장 썩는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고 비가 오면 붉은 진흙이 흘러내렸다. 석탄을 실은 기차가 지나면 탄가루가 자욱하게 날렸다. 어른들은 연탄을 사러 비탈길을 오르내렸고 아이들은 말린 오징어 다리를 씹으며 아랫도리를 내놓은 채 골목을 뛰어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옛날이야기다. 마을에는 빈집이 더 많았다. 언덕 꼭대기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모두 이사를 가 버린 탓이다. 길은 시멘트로 포장이 됐고 더 이상 진흙이 흘러 내리지도, 탄가루가 날리지도 않는다.
등대오름길은 등대 앞에서 끝이 났다. 등대 앞은 마을버스 종점. 전봇대에 ‘동해, 묵호동 종점’이라고 덩그러니 씌어 있었다. 지도를 보니 여기서부터 해맞이길이 시작되고 해맞이길에서 논골1길, 논골2길, 논골3길, 논골4길이 갈래를 치고 있었다. 논골길은 옛날 골목길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집들이 위태롭게 서 있었고 붉고 푸른 양철 지붕을 인 집들이 좁을 골목을 사이에 두고 나란했다. 낯선 이방인을 보고 개가 짖었고 공터마다 텃밭이 가꿔져 있었다. 논골길 대부분에서 묵호항이 내려다보였다. 거대한 냉동창고, 시멘트 공장, 석탄 공장이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가끔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 왔다. “뭐, 풍경이야 크게 변한 건 없어요. 사람들이 떠나갔을 뿐이지.” 논골길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10년 전에만 해도 여기 묵호에 2만 명이 넘게 살았어요. 지금이야 5천 명이나 될까? 여기 언덕마을에 사는 사람도 죄다 노인네들뿐이지요 뭐. 요즘 젊은 사람들이 배 타려 하지도 않고….”
어느새 저물 무렵이었다. 마을 너머로 붉은 햇덩이가 사그라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바다는 짙은 푸른색으로 변해갔고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돋아났다. 등대 앞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수평선 너머에 하나둘씩 불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어화였다. 신기루처럼 망망하게 떠 있었다. 소설가가 ‘밤이면 오징어배의 불빛으로 묵호의 바다는 유월의 꽃밭처럼 현란’하다고 했던 그 바다였다. 마을에도 불이 켜졌다. 수백 개, 아니 수천 개의 불빛으로 산비탈이 어지럽고 환했다. 그 불빛에 잠시 멀미가 이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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