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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동 등대오름길-네이버캐스트

띨빡이 2009. 7. 16. 12:43

묵호항이었다. 바람이 세찬 날이었다. 코끝에 비린내가 훅 하고 끼쳐왔다. 길가에는 오징어가 바닷바람에 펄럭이며 말라가고 있었다. 그 밑으로 도둑고양이들이 어슬렁거렸다. 여름 한낮의 항구는 무더웠고 시끌벅적했다. 포구에는 쉴 새 없이 오징어잡이 배들이 들락거렸다. 어시장에서는 여기저기서 오징어를 사라는 상인들의 외침이 들렸다.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든 관광객들이 무리를 지어 어판장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얼음을 잔뜩 실은 리어카가 관광객들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녔다. 포구에 정박한 배들은 서로의 몸을 묶고 파도를 견디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맞은편 산등성이를 따라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 붉고 푸른 지붕을 얹은 집들이 어깨를 맞대고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게딱지를 얹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마을 꼭대기에는 하얀 등대가 서 있었다.

 

 

 

골목은 등대로 향하고

한때 묵호는 동해안 제1의 무역항이었다. 무연탄과 석회석의 해외수출 항구이자 어업전진기지였다. 전국에서 뱃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남자들은 오징어잡이 배를 탔고 무연탄 공장에서 석탄을 날랐다. 아낙들은 어시장에서 밤새 생선의 배를 갈랐다. 항구는 밤낮없이 흥성거렸다. 소설가 마르시아스 심은 그의 단편소설 <묵호를 아는가>에서 묵호를 이렇게 묘사했다. “예전의 묵호는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흥청거렸다. 산꼭대기까지 다닥다닥 판잣집이 이어졌고, 아랫도리를 드러낸 아이들은 오징어 다리를 물고 뛰어다녔다. 밤이면 오징어배의 불빛으로 묵호의 바다는 유월의 꽃밭처럼 현란했다.

 

묵호 어시장 맞은편으로 난 ‘등대오름길’을 따라가면 묵호등대에 닿는다. 길 입구는 ‘만물 슈퍼’ 옆이다. 예쁜 등대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옆에 ‘늙은 어부의 노래’라는 시가 적혀있었다. 시를 지은 이는 ‘만물슈퍼 주인아저씨’. “집터도 없고 벌이도 없어 참 힘든 시절…/ 자식들 배 골치 않게 하려고 배를 탔어/ (중략) / 묵호는 나의 꿈이자 희망이 되어준 곳이지…/ 이제 태양이 뜨는 이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 아마 슈퍼 주인은 배를 탔나 보다. 자식들 배 곯지 않게 하려고 매일같이 거센 바다와 싸웠나 보다. 그렇게 생은 지나갔고, 그 사이 아이들은 자라 어른이 되어 그의 품을 떠났고…. 그는 이제 배를 타지 않는다. 그래도 남은 생을 바다 가까운 곳에서 보내고 싶어 이런 시를 썼던 것일 지도 모른다. 골목은 참 예뻤다. 오른쪽으로 모퉁이를 도니 ‘묵호는 술과 바람의 도시이다’라는 글씨가 씌어진 하얀 벽이 나타났다. 역시 소설 <묵호를 아는가>에 나오는 한 대목이었다. “부두의 적탄장에서 날아오르는 탄불처럼 휘날려 어떤 이는 바다로, 어떤 이는 낯선 고장으로 그리고 어떤 이는 울렁울렁하고 니글니글한 지구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멀리 무덤 속으로 떠나갔다.

 

길은 느긋하게 비탈을 따라 올라갔다. 오징어를 그려 넣은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림 위로는 빨래집게가 걸려 있었는데 실제로 오징어를 빨래집게에 걸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골목 한 켠에는 조그만 텃밭도 만들어져 있었다. 상추며 부추 등 야채를 심어놓았다. 텃밭의 이름은 ‘늙은 새댁의 텃밭’. 갈색 털을 가진 강아지 한 마리가 무심한 눈길로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 ‘텃밭 지킴이 이름은 만덕구’. 슬며시 웃음이 났다. 벽화를 감상하며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길섶에는 해국이 가득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짙은 보라색 꽃이 흔들렸다. 푸른 바다와 보라색 해국의 선명한 대비가 눈을 어지럽혔다. 해국은 높다란 계단을 따라가며 피어있었고 그 끝에 마을이 있었다.

 

 

어화 혹은 어지러운 마을의 불빛들

마을은 작았다. 2,30여 호나 될까. 낮은 집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마을은 조용했다. 간간히 멀리서 파도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지붕 위, 오징어를 말리던 덕장은 텅 비어 있었다. 한때 이곳은 붉은 언덕으로 불렸다고 한다. 뱃사람들이 몰려 살았고 시멘트 공장과 무연탄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여름이면 생선 내장 썩는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고 비가 오면 붉은 진흙이 흘러내렸다. 석탄을 실은 기차가 지나면 탄가루가 자욱하게 날렸다. 어른들은 연탄을 사러 비탈길을 오르내렸고 아이들은 말린 오징어 다리를 씹으며 아랫도리를 내놓은 채 골목을 뛰어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옛날이야기다. 마을에는 빈집이 더 많았다. 언덕 꼭대기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모두 이사를 가 버린 탓이다. 길은 시멘트로 포장이 됐고 더 이상 진흙이 흘러 내리지도, 탄가루가 날리지도 않는다.

 

등대오름길은 등대 앞에서 끝이 났다. 등대 앞은 마을버스 종점. 전봇대에 ‘동해, 묵호동 종점’이라고 덩그러니 씌어 있었다. 지도를 보니 여기서부터 해맞이길이 시작되고 해맞이길에서 논골1, 논골2, 논골3, 논골4길이 갈래를 치고 있었다. 논골길은 옛날 골목길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집들이 위태롭게 서 있었고 붉고 푸른 양철 지붕을 인 집들이 좁을 골목을 사이에 두고 나란했다. 낯선 이방인을 보고 개가 짖었고 공터마다 텃밭이 가꿔져 있었다. 논골길 대부분에서 묵호항이 내려다보였다. 거대한 냉동창고, 시멘트 공장, 석탄 공장이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가끔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 왔다. “뭐, 풍경이야 크게 변한 건 없어요. 사람들이 떠나갔을 뿐이지.” 논골길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10년 전에만 해도 여기 묵호에 2만 명이 넘게 살았어요. 지금이야 5천 명이나 될까? 여기 언덕마을에 사는 사람도 죄다 노인네들뿐이지요 뭐. 요즘 젊은 사람들이 배 타려 하지도 않고….

 

어느새 저물 무렵이었다. 마을 너머로 붉은 햇덩이가 사그라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바다는 짙은 푸른색으로 변해갔고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돋아났다. 등대 앞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수평선 너머에 하나둘씩 불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어화였다. 신기루처럼 망망하게 떠 있었다. 소설가가 밤이면 오징어배의 불빛으로 묵호의 바다는 유월의 꽃밭처럼 현란하다고 했던 그 바다였다. 마을에도 불이 켜졌다. 수백 개, 아니 수천 개의 불빛으로 산비탈이 어지럽고 환했다. 그 불빛에 잠시 멀미가 이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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