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가지나방이 일명 후추나방으로 불리는 까닭은 날개에 마치 후추를 흩뿌려 놓은 것 같은 무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 종에서 날개가 마치 숯검댕으로 뒤덮인 것 같은 검은 형태(dark morph)가 처음 발견된 것은 <종의 기원>이 출간되기도 전인 1848년의 일이었다. 당시 영국 맨체스터 지방의 곤충학자 에들스턴(R. S. Edleston)은 숯처럼 검은 날개를 지닌 희귀한 형태의 나방을 채집하여 Biston carbonaria 라고 명명했다. 검은 형태의 회색가지나방은 처음에는 희귀했지만 산업혁명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지역이면 어디나 그 빈도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어느덧 밝은 형태(light morph)보다 더 흔해지기 시작했다. 다윈이 살던 켄트 지방에서는 그의 생애 동안 한번도 검은 형태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20세기 중반에 이르면 다윈의 생가가 있는 브롬리의 회색가지나방은 열 마리 중 아홉 마리가 검은 형태였다.
간단한 돌연변이로 생겨난 검은 형태의 빈도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곤충학자 터트(J. W. Tutt)는 1896년에 새들에 의한 포식(predation)과 그를 피하기 위한 나방의 위장(camouflage)이 선택압(selection pressure)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의류로 뒤덮인 나무 껍질을 배경으로 밝은 형태의 회색가지나방이 훨씬 훌륭한 위장 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새들의 포식을 피할 수 있었는데, 산업혁명이 진행되며 나무 껍질이 숯검댕으로 시커멓게 변하자 오히려 검은 형태의 나방들이 더 큰 위장 효과를 누리게 되어 개체군 내의 그들의 빈도가 증가하게 된다는 가설이었다.
이에 케틀웰은 오염된 지역과 청정한 지역 모두에서 실제로 새들이 나방을 잡아먹는 걸 관찰했다. 두 형태의 나방을 동일한 수로 나무에 풀어줬더니 오염된 지역에서는 43마리의 검은 형태가 새들에게 잡혀 먹히는 동안 밝은 형태는 불과 15마리만 잡혀 먹혔다. 한편 청정한 지역에서는 각각 164마리의 검은 형태와 26마리의 밝은 형태의 나방들이 잡혀 먹혔다. 케틀웰은 생태학자들이 개체군의 크기를 측정할 때 흔히 사용하는 방법인 ‘표지-방사-재포획법(mark-release-recapture method)’을 사용하여 두 형태에 미치는 포식압(predation pressure)의 차이를 조사했다. 밝은 형태의 나방은 오염 지역에서 모두 64마리가 방사되어 16마리가 재포획(25%)된 데 비해 청정 지역에서는 393마리 중 54마리가 재포획(13.7%)되었다. 반면, 검은 형태의 나방은 오염 지역에서는 154마리 중 82마리(53%)가 재포획된 데 비해 청정 지역에서는 406마리 중 겨우 19마리(4.7%)만 재포획되었다. 터트의 가설을 상당히 잘 지지하는 연구 결과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