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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현장-네이버캐스트

띨빡이 2009. 7. 16. 12:39

<종의 기원>(1859)에서 다윈은 “자연선택은 오로지 미세한 연속적 변이들을 가지고 작동하며, 크고 급작스런 도약을 하는 게 아니라 짧고 분명한 그러나 느린 걸음으로 나아간다”라고 적었다. 이 문장은 훗날 엘드리지(Niles Eldredge)와 굴드(Stephen J. Gould)로 하여금 진화의 속도가 늘 일정하게 느린 게 아니라 때로는 상당히 빠를 수도 있다는 지극히 당연하고 하찮은 얘기를 침소봉대하여 단속평형(punctuated equilibrium)이라는 사뭇 유치한 이론으로 과대포장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지질학자로 학문의 세계에 입문했고 유전자의 속성에 대해 이렇다 할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던 상태에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설명하려던 다윈으로서는 때로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일어나는 진화의 현장을 상상하기 어려웠을 뿐이다.

 

 

다윈 자신은 물론 다윈의 추종자들이 제시한 예들은 모두 진화의 결과들이었고 자연선택은 그런 결과가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에 대한 설명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자연선택이 개체군 내의 유전자 빈도의 변화를 일으키는 메커니즘이자 실제로 벌어지는 과정임을 보여줄 수 있는 확실한 실험적 증거가 필요했다.

 

다윈주의 진화생물학자들이 기다리던 결정적인 증거는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거의 정확하게 100년이 흐른 뒤에야 나타났다. 1955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옥스퍼드 대학의 곤충학자 케틀웰(H. B. D. Kettlewell)의 회색가지나방(Biston betularia, peppered moth)에 관한 논문들은 진화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 최초의 연구보고서였다.


 

 

회색가지나방이 일명 후추나방으로 불리는 까닭은 날개에 마치 후추를 흩뿌려 놓은 것 같은 무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 종에서 날개가 마치 숯검댕으로 뒤덮인 것 같은 검은 형태(dark morph)가 처음 발견된 것은 <종의 기원>이 출간되기도 전인 1848년의 일이었다. 당시 영국 맨체스터 지방의 곤충학자 에들스턴(R. S. Edleston)은 숯처럼 검은 날개를 지닌 희귀한 형태의 나방을 채집하여 Biston carbonaria 라고 명명했다. 검은 형태의 회색가지나방은 처음에는 희귀했지만 산업혁명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지역이면 어디나 그 빈도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어느덧 밝은 형태(light morph)보다 더 흔해지기 시작했다. 다윈이 살던 켄트 지방에서는 그의 생애 동안 한번도 검은 형태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20세기 중반에 이르면 다윈의 생가가 있는 브롬리의 회색가지나방은 열 마리 중 아홉 마리가 검은 형태였다.

간단한 돌연변이로 생겨난 검은 형태의 빈도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곤충학자 터트(J. W. Tutt)는 1896년에 새들에 의한 포식(predation)과 그를 피하기 위한 나방의 위장(camouflage)이 선택압(selection pressure)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의류로 뒤덮인 나무 껍질을 배경으로 밝은 형태의 회색가지나방이 훨씬 훌륭한 위장 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새들의 포식을 피할 수 있었는데, 산업혁명이 진행되며 나무 껍질이 숯검댕으로 시커멓게 변하자 오히려 검은 형태의 나방들이 더 큰 위장 효과를 누리게 되어 개체군 내의 그들의 빈도가 증가하게 된다는 가설이었다.

 

이에 케틀웰은 오염된 지역과 청정한 지역 모두에서 실제로 새들이 나방을 잡아먹는 걸 관찰했다. 두 형태의 나방을 동일한 수로 나무에 풀어줬더니 오염된 지역에서는 43마리의 검은 형태가 새들에게 잡혀 먹히는 동안 밝은 형태는 불과 15마리만 잡혀 먹혔다. 한편 청정한 지역에서는 각각 164마리의 검은 형태와 26마리의 밝은 형태의 나방들이 잡혀 먹혔다. 케틀웰은 생태학자들이 개체군의 크기를 측정할 때 흔히 사용하는 방법인 ‘표지-방사-재포획법(mark-release-recapture method)’을 사용하여 두 형태에 미치는 포식압(predation pressure)의 차이를 조사했다. 밝은 형태의 나방은 오염 지역에서 모두 64마리가 방사되어 16마리가 재포획(25%)된 데 비해 청정 지역에서는 393마리 중 54마리가 재포획(13.7%)되었다. 반면, 검은 형태의 나방은 오염 지역에서는 154마리 중 82마리(53%)가 재포획된 데 비해 청정 지역에서는 406마리 중 겨우 19마리(4.7%)만 재포획되었다. 터트의 가설을 상당히 잘 지지하는 연구 결과였다.

 

 

케틀웰의 실험은 이 같은 개념적 간결함과 명확한 결과에 덧붙여 거의 모든 생물학 교과서에 등장하며 두 형태의 위장 효과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유명한 사진 덕택에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에 가장 확실한 구원투수로 자리를 잡았다. 케틀웰은 <종의 기원> 출간 100주년에 맞춰 1959년 대중적인 과학잡지인 사이언티픽 어메리컨(Scientific American)에 “다윈의 잃어버린 증거(Darwin’s missing evidence)”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며 탁월한 소통 감각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회색가지나방의 이야기는 일반생물학 교과서와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과학 서적에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내용보다 훨씬 복잡하다.

 

우선 케틀웰이 그의 저서 <흑색증의 진화(The Evolution of Melanism)>(1973)에서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회색가지나방에는 검은 형태와 밝은 형태의 두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두 형태 사이에 다분히 점진적인 변화 정도를 나타내는 많은 중간 형태들이 존재한다. 이런 중간 형태들이 여러 배경 환경에서 보이는 적응도(fitness)에 관한 연구는 수행되지 않았다. 케틀웰 자신도 그의 100주년 기념 논문에서 이들에 대한 언급을 생략했다, 그래서 미네소타 대학의 과학철학자 올친(Douglas Kellogg Allchin)은 2001년 ‘대학과학교육 저널(Journal of College Science Teaching)’에 게재한 그의 논문에서 이를 “케틀웰의 잃어버린 증거”라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생물학자 엔들러(John Endler)는 그의 저서 <야외에서의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in the Wild)>(1986)에서 이 같은 잃어버린 증거와 스토리의 단순화가 케틀웰 연구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라고 평가한다.

  

 

  

 

회색가지나방의 자연선택은 실제 상황에서도 장기간에 걸쳐 그대로 재현되었다. 20세기 중반부터 영국 정부가 시행하기 시작한 대기오염방지법 덕택으로 19세기 말 맨체스터의 경우 100마리 중 99마리가 검은 형태였던 상황이 점차 역전되기 시작했다. 21세기 초반 현재 영국이나 유럽의 경우 두 형태의 상대빈도가 이제 거의 산업혁명 이전의 시기로 복귀되었다. 진화가 스스로 회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케틀웰의 연구가 우리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연선택의 최초 실험은 아니었다. 과학자가 치밀하게 설계한 실험은 아니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 전 인간이 농사를 처음 짓기 시작한 이래 우리는 해충들과 줄기차게 전쟁을  벌여왔다. 다만 그 과정 속에 끊임없이 자연선택이 일어나고 있는 걸 미처 몰랐을 뿐이다.

 

기원 전 25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수메르인들은 이미 유황 화합물을 살충제로 사용한 바 있으며, 중국인들도 기원 전 1200년경에 균류와 해충을 구제하기 위해 수은 등의 화학물질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류의 해충구제 역사는 그야말로 전쟁의 역사이다. 사용하는 용어만 보더라도 전쟁터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그리 다르지 않다. 인간은 애초부터 그들과 함께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가차없이 선전포고를 하고 끝도 없는 전투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DDT의 탁월한 살충 효과를 처음 발견한 것은 1939년이었다. 그 후 DDT는 농작물의 해충을 박멸하는 것에서부터 인간을 공격하는 기생충을 구제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널리 사용되었다. 6-25 전쟁 때 미군 병사들이 우리 아이들의 머리 위로 DDT를  쏟아 붓는 사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거치며 DDT를 비롯한 각종 살충제에 저항성을 보이는 경우들이 속속 관찰되었고, 급기야 1962년에는 레이철 카슨(Rachel Carson)의 그 유명한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출간되었다.


현재까지 개발된 그 어느 살충제도 100%의 효율을 나타내지는 못한다. 해충들의 유전적 다양성 때문에 아무리 강력한 살충제를 살포하더라도 그에 대한 내성을 갖고 있는 개체들이 있어 거의 언제나 개체군의 일부는 살아남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살충제로 제거된 개체들이 비워준 공간을 내성을 지닌 개체들의 자손들이 메우게 되므로 더 이상 같은 살충제로는 효과를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더 독성이 강한 살충제를 뿌려야 하고 해충은 해충대로 점점 더 면역력이 강한 개체들만 살아남아 세대를 이어가게 된다. 결과적으로 해충 개체군에서 내성이 강한 개체들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빈도가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카슨이 지적한 이 같은 악순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다. 나는 일찍이 진화, 좀더 엄밀히 말해서 소진화를 “시간에 따른 개체군의 유전자 빈도의 변화, 즉 세대를 거듭하며 개체들의 형태, 생리, 행동 등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진화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 눈 앞에서 늘 적나라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구태여 실험을 설계하지 않아도 자연선택은 항상 우리 주변에서 작동하고 있다. 숲 속이나 농촌뿐 아니라 병원, 회사, 학교 등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자연선택은 펄펄 살아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