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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주실마을 숲-네이버캐스트

띨빡이 2009. 7. 11. 09:28

경북 영양을 향해 출발했다. 서울에서 불과 280km 거리, 고속도로를 달리면 금세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중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중앙고속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리고도 국도로 70km를 더 가야 한다. 그것도 산길이다. 영양 가는 길은 한 발 한 발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경북 영주에서 국도를 타고 가도 되고 안동을 거쳐도 된다. 하지만 어느 길을 가든 1천 미터가 넘는 태백산맥을 넘어야 영양에 갈 수 있다. 하지만 강릉 가는 길목의 대관령, 속초로 향하는 미시령처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도로가 아니기 때문에 한적한 시골 산길을 달려야 한다. 영양은 일월산, 통고산, 백암산으로 둘러싸인 산간내륙 지방이다. 숲을 보러 가는 길에 거대한 산은 지나치고 조그만 마을숲을 찾아가는 길이니 ‘도대체 어떤 숲이기에?’ 하는 물음이 생긴다.

 

 

시인 조지훈의 생가로 알려진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 입구는 숲으로 싸여 있다. 장승을 뜻하는 사투리를 섞어 ‘수구막이 숲’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마을 숲은 영양에서 봉화 가는 길가에 있다. 길가에 있으면서도 훼손되지 않고 수백 년 된 아름드리나무들이 모여 있다.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숲은 그 향기부터 달랐다. 한양 조씨 집성촌인 주실마을에선 100여 년 전 마을 입구에 우거져있는 숲에 소나무를 심었다. 이후에도 밭을 매입해 나무를 심었고 종중에선 숲을 마을의 한 부분으로 발전시켰다. 덕분에 당산목으로 불리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비롯해 느릅나무까지 마을을 감싸고 있다. 마을입구에 늘어선 나무들은 마을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숲을 지켜주며 더불어 살고 있다.

 

그렇게 꾸준히 공존한 까닭인지 지난 2008년 제9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선정의 이유도 공존이었다. ‘생명의 숲’ 관계자에 따르면 “주민들이 나서서 숲을 가꾼 것이 주요했다. 수백 년 정성껏 잘 가꿔진 숲이라 울창했고 다양한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마을 입구에 차를 세우고 숲을 향해 걸었다. 우거진 숲 사이로 보이는 버스정류장은 마치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서 고양이 버스를 기다리는 장면이 연상된다. 무더위의 시작을 알리는 초여름 한낮인데도 나무그늘 아래는 시원한 바람이 분다. 나무 뒤편으로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푸르게 우거진 나무 아래 서 있으니 조금 과장을 보태 피톤치드가 느껴지는 듯하다.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이란 표지를 보며 숲의 소중함을 되새겨 본다.

 

 

나무인줄 알고 사진을 찍다가 허탈함을 느꼈다. 시멘트로 만든 전봇대다. 파란 잎사귀의 넝쿨이 전봇대를 가득 둘러싸는 자연의 눈속임에 감탄했다. 숲으로 들어가 구석구석 뒤져보고 싶지만 너무나 울창하다. 도로에서 불과 2미터 남짓 떨어진 곳인데 깊은 숲 속에 들어온 듯 착각할 정도다. 길을 따라 좌우로 나무그늘에서 쉴 수 있도록 의자를 설치해놓았다. 시인 조지훈의 생가가 있는 마을답게 시를 담은 비석도 놓여있다. 마을 입구에 삼림욕장이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까? 혹은 숲과 문학이 만난 작은 문화공간이라고 해야 할까?

 

숲을 지나 마을로 들어오면 냇가를 건너는 다리가 있다. 의외로 큰 다리에 멈칫했다. 조지훈 시인의 생가를 찾아보는 사람들이 많아 이미 마을은 유명세를 탔다. 멀리서 마을을 바라보면 기와집들이 모여 있다. 주실마을은 집성촌답게 종중이 마을을 관리한다. 기존 천연림을 보완해 나무를 심은 것도 지자체의 도움을 받아 종중이 꾸준히 하고 있다. 마을 입구 작은 슈퍼에 모여 있던 아이들도 저녁시간이 되자 집으로 돌아간다. 길을 오고가는 차들이 바뀌고 사람들이 입은 옷이 바뀌었을 뿐 농사짓고 글 읽는 옛날 마을 모습은 그대로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주실마을 숲을 보면서 되새겨 본다. 나무를 심고 가꾸며 사는 삶이 진정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