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이나 현실적인 문제들을 외면하는 디자인이 가능한 것일까? 디자이너라면 적어도 눈 앞에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정밀하게 살피고 해결하는 것이 의무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의무감들을 가볍게 벗어던진 디자이너들도 많다. 그 첫 손가락에 꼽힐 만한 디자이너가 바로 하이메 아욘(Jaime Hayon) 이다. 그가 디자인한 모노컬러 화병들을 보면 이게 화병인지 그냥 장난으로 만든 물건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화병으로서의 기능적 배려는 거의 보이지 않고, 디자이너의 산만한(?) 개성이 강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디자인 중에는 이처럼 용도를 짐작하기 힘든 것들이 많다. 아마 몇 년 전이었다면, 디자인 취급을 받지 못하고 많은 비판에 직면했을 것이다. 하지만 격세지감이라. 이제는 그런 디자인들도 당당하게 디자인의 명부에 선명하게 이름을 기재하고 있다. 게다가 하이메 아욘이 누구인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차세대 디자이너 아닌가. 그만큼 디자인계도, 디자인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했다. 아직까지 세계적인 디자이너 한명 배출하지도 못한 한국의 상황에서는 이런 ‘괴상한’ 디자이너를 이해하는 것이 다소 버거운 일일 수 있다. 도대체 이런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좋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