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또다른 창건설화로서는,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한 자리에 대나무가 솟았는데, 그 곳에 불전(佛殿)을 지으니 곧 홍련암이라고도 전한다.
두 이야기 전부 의상대사가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올려 관음보살을 친견했다는 내용에서는 일치하며, 부분적으로 파랑새·대나무·석굴 등이 첨가된 것이므로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홍련암의 연혁은 주로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에 의거해 살펴볼 수 있다. 그 책에 따르면 의상대사의 창건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1619년(광해군 11)에 중건되었고, 1752년(영조 28)에 덕린(德麟)스님이 중수했다. 이어서 1797년(정조 21)에 혜민(惠旻)스님 중건, 그리고 1869년(고종 6)에 의연(義演)스님이 중건했으며 1911년에 흥운(興雲)·청호(晴湖) 두 스님이 중수했다고 한다. 1869년의 중건은 1866년의 홍수로 무너졌기 때문이며, 1911년의 중수는 1908년(융희 2)에 절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연혁이 비교적 짧고 통일신라·고려시대의 연혁이 거의 전하지 않는 점이 아쉽지만, 남겨진 기록을 통해서나마 그런대로 낙산사와 더불어 꾸준히 법등을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 절의 당우로는 관음전과 요사가 있다.
전각이나 불상·불화등에서 오래된 것은 없으나 홍련암 전체가 현재 강원도문화재자료 제36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에는 동암 도봉(東庵道峰)스님이 1962년에 중건한 봉향각(奉香閣)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관음전 등은 1975년의 중창 때 지어졌으며, 안에 봉안된 탱화 역시 같은 해에 조성되었다.
관음전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인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서 바닷가 암석굴(巖石窟) 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 전각은 법당 가운데쯤에 조그맣게 마루를 뚫어 놓아 그곳으로 출렁이는 바닷물을 실감나게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특이하다. 절 근처 바닷가에는 보기 드문 석간수(石澗水)가 있는데, 이 샘은 원효스님이 양양에 있는 영혈사(靈穴寺) 샘물을 석장(錫杖)에 담아 끌어 왔다는 설화가 전한다. 이 샘물은 지금은 보타전 앞으로 옮겨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