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6월19일
이탈리아 라벤나(Ravenna)의 오스티네 귀족 출신인 성 로무알두스(Romualdus, 또는 로무알도)는 부친의 살인 사건 때문에 클라세의 산 아폴리나레 수도원으로 피신하였다가, 20여세 때에 그곳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더욱 엄격한 생활을 하려고 수도원을 떠나 베네치아(Venezia) 교외에 살던 마리누스(Marinus)라 부르는 은수자의 제자가 되었다. 978년경 베네치아 공화국의 총독인 성 베드로 우르세올루스(Petrus Urseolus, 1월 10일)가 마리누스와 성 로무알두스를 쿡사(Cuxa)로 데리고 와서 베네딕토 회원이 되게 하자, 이들은 수도원 가까운 곳에 은둔소를 짓고 은수자로 살았다. 그 후 그는 부친이 회개하여 수도자가 되었음을 알고 부친을 만나기 위하여 이탈리아로 갔으며, 이때 오토 3세 황제는 그를 산 아폴리나레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2년 뒤에 사임하고는 페레움(Pereum) 교외에서 은수생활을 하였다. 그 후 헝가리의 마자르인(Magyars)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다가 강제로 쫓겨나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고령에 따른 질병으로 인하여 1027년 6월 19일 파비아노 교외의 발 디 카스트로(Val di Castro)에서 운명하였다. 그가 세운 다섯 개의 은둔소들 가운데 카마돌리에 세운 것은 후일 카말돌리회의 모원으로 발전하였다. 그는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8세(Gregorius V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참고자료
로무알도는 '영광과 권세'란 뜻이다.
3년 후에 몇몇 수사들에게서 그는 안정되지 못한 성덕을 추구한다는 깨우침을 받고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교황의 허락을 받아 헝가리에 복음을 전하러 갔다. 또 어떤 때는 지독한 영적 무미 건조함 때문에 고통을 당하기도 했다.
(8절)는 구절을 읽으며 기도하던 중 놀라운 빛과 영감을 얻게 되었는데 이것은 평생 그를 떠나지 않았다.
그 뒤에 수도원에서 머물던 그는 방탕한 생활 때문에 자기에게서 꾸지람을 들은 어떤 젊은 귀족으로부터 수치스러운 죄명으로 고발을 당했다. 그는 엄격한 참회 행위를 해야 했고 미사를 드리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공동체에서 격리되었다.
그가 세운 수도원들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토스카나에 있는 카말돌리(주인의 이름인 Campus Maldoli를 따서)수도원이다. 여기서 그는 수도공동체와 은수 생활을 결합시켜 카말돌리의 베네딕토 수도회를 세웠다.
그리스도는 훌륭한 지도자로서 우리를 완전한 성덕으로 부르신다.
로무알도가 살고 있던 수도원에 폴란드의 한 공작의 아들이 있었다.
로무알도의 일생은 하느님의 자비하심이 무한하다는 것과 죄인이라 해도 진실로 통회하고 은총이 인도하심에 잘 따른다면 얼마든지 완덕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표시해 주는 좋은 예이다.
그는 이탈리아의 라벤나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마음의 순결을 잃어버리고 부모와 같이 무질서한 생활을 했으나 신앙만은 여전히 보존하고 있었다. 그는 종종 말을 타고 인기척 없는 고요한 곳에 가서 교회에 위반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싶다든가 혹은 성인과 같은 완덕의 생활을 하고 싶다든가 하는 충동을 받은 때도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무서운 사건이 일어났고, 그 기회에 하느님의 은총은 그의 회개를 재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건이란 것은 그의 부친 세르키오가 사소한 일로 친척의 한 사람과 불목이 되어
마음 깊이 충격을 받고 라벤나 교회의 클라세 수도원에 가서 40일간 살인죄를 범한 부친과 그리고 그곳에 참석한 자기를 위해 속죄의 고행을 하기 시작했다. 속죄가 끝나 마음이 진정된 후 로무알도는 다시 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가려고 하니
그 날 밤 로무알도는 수사에게 인도되어 교회에 갔다. 다시 자기 무덤으로 사라졌다.
수도원에 들어갈 때 그는 겨우 21세였지만 처음부터 모든 일을 정성껏 행하며 특히 기도와 극기를 좋아햇다. 로무알도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여러 차례 이를 충고했지만,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그를 미워하게 되고 그중에는 그를 죽이려고 한 사람까지도 있었다 .
978년경 베네치아의 대통령인 베드로 오르세올로가 세속을 떠나 로무알도도 그 수도원 부근에 초가를 마련하고 종전의엄격한 생활을 계속하는 한편 농업에도 종사했다.
그 무렵 로무알도는 여러 가지 시련을 당햇다.
아버지에게는 수도원 생활이 너무 엄격했음이지 오래지 않아서 다시 세속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수도원에 머무를 것을 간고히 애원했다. 오래지 않아 선종했다고 한다.
그 후 수년간은 로무알도에 있어서 대단히 복잡한 시대였다. 966년, 독일의 황제 오토 3세는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에 자기의 보호하에 있는 클라세 수도원도 방문하게 되엇는데 그곳의 무질서함을 보고 개혁할 결심으로 이에 적당한 인재를 수도자들에게 선택하라고 한 결과 누구를 막론하고 로무알도를 원했다. 그도 할 수 없이 승낙하고 그곳에 갔으나 그의 허다한 노력에도 허사였다.
그에게 위로가 된 것은 수명의 제자들의 열심한 생활이었다. 보니파시오가 순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로무알도는 그곳으로 급히 가려고 까지 생각했으나 그때 마침 중병으로 누워 있었으므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그 후 로무알도는 어떤 부자에게서 카말돌리라는 한적한 토지를 기부 받아 그곳에 제자들을 위한 수도원을 설립하고 동시에 카마돌리회를 창설했다. 이수도원은 오늘날까지 계속 그 엄격한 생활양식을 지켜오고 있다.
귀족 출신의 한 청년이 들어왔다. 로무알도도 자기와 같이 남몰래 방탕한 생활을을 하고 있다고, 없는 사실을 들어 나쁜 소문을 퍼뜨렷다.
그는 나이가 많아 임종이 가까운 줄을 알았다. 이튿날 아침 그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제자들이 방에 가서 보니
*수도생활:게시판1822번. *아빠스란?:게시판1751번,945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성 베드로 다미아노가 쓴 [성 로무알도의 생애]에서 (Cap. 31 et 69: PL 144, 982-983. 1005-1006)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자기를 버렸다. 로무알도는 파렌초시 근처에서 3년간 살았다. 첫해에 수도원을 세우고 아빠스를 두는 공동체를 설립했다. 남은 2년동안 은수 생활을 했다. 여기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그를 높은 완덕의 경지로 올려 성령의 감도하에 미래에 생길 여러가지 일들을 예견하고 지성의 빛으로써 신구약의 많은 숨은 신비들을 깊히 파고 들어갔다. 그는 자주 하느님을 관상하는 중에 탈혼에 빠져 한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하느님께 대한 표현할 수 없는 불타는 열정으로 여러가지 짧은 기도를 부르짖곤 했다.
"사랑하는 예수여, 꿀보다 더 달콤한 주님이시여, 표현할 수 없는 나의 갈망이시여,성인들의 기쁨이시여, 천사들의 즐거움이이여."
성령의 감도를 받아 순수한 기쁨 가운데 그가 부르짖는 애원은 우리 인간의 말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성인은 어디에 거처하려 할 때마다 자기 방에다 제대와 함께 작은 기도소를 만들고 두문 불출하면서 아무도 거기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여러 은수처에서 거처한 후 이제 자신의 마지막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발디카스트로에 세웠던 수도원으로 되돌아갔다. 그 곳에서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아무 두려움 없이 기다리는 동안 작은 기도소가 딸린 방을 따로 만들고서 거기에 들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침묵을 지키고자 했다.
은수처가 만들어져 그 곳에 들어가 은거하려 할 때, 그는 점점 심해지는 육신의 고통으로 괴로움 당하기 시작하고 병으로 인한 것보다는 연로한 탓으로 기력이 쇠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모든 기력을 잃고 고통이 더욱 심해지며 호흡이 가빠졌다.
해가 기울어지기 시작할 때, 함께 있던 두 형제를 보고 밖으로 나가 방문을 닫으라고 말한 후 새벽에 아침기도를 바치려 갈 때 다시 들리도록 했다. 형제들은 마지 못해 나가기는 나갔지만 성인의 병세가 걱정이 되어 잠자리로 들지 않고 그들의 스승이 갑자기 세상을 떠날까 염려하여 몰래 방 가까이에서 지켜 보았다.
얼마동안 거기에 숨어 있은 후 문에다 귀를 기울여 들어 보았으나 몸이 움직이는 소리도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으므로 성인께 죽음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문을 열어 젖히고 급히 뛰어들어갔다. 불을 켰을 때 이미 그의 복된 영혼은 천상으로 이끌려 올라간 채 누워 있는 거룩한 시신을 보게 되었다. 이 진주는 이제 위대한 임금님의 궁전에서 영예로운 자리를 채우고 있다. (가톨릭굿뉴스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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