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6월17일 피사의 성 라이네리오 / 성 알베르토-카톨릭 성인

띨빡이 2009. 6. 19. 05:43
축일:6월17일 피사의 성 라이네리오
San Ranieri di Pisa St. Raynerius Born:1117 in Pisa, Italy Died:1161 at the abbey of Saint Vito, Pisa, Italy of natural causes; buried in the Pisa Cathedral Canonized:by Pope Alexander III Ranieri = invincibile guerriero, dal tedesco = invincible guerriero, from the German 성 라이네리오는 피사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는 다소 경박한 짓들을 일삼았다. 그러나 그의 삼촌의 영향 때문에 산 비또 수도원의 뛰어난 수도자인 알베르또 레까뻬꼬레와 알게 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려는 뜻에서 먹기를 거부한 채 3일 동안이나 눈물을 흘렸는데, 그 이후부터 맹인이 되었다.그의 어머니가 날마다 주님께 기도한 결과, 마침내 하느님이 기적을 베푸시어 영혼과 함께 육신의 눈을 밝혀 주셨던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팔레스티나로 가서 살았는데, 타보르산에서 그는 십자가를 그음으로써 맹수를 쫓은 적이 있고, 또 빵을 많게 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한 기적도 행하였다. 피사로 돌아온 그는 계속하여 엄격한 생활을 하다가, 성 비또 수도원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기적의 성수로 치유의 은사를 베풀었으므로 "데 아꽈"(de acqua)라는 별명을 얻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 비토 순교자 축일:6월15일.게시판1818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성 알베르토(Albert) 1845-1916년
 
 
 
1845년 8월 20일 폴란드 이고알로미아(Igoalomia)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알베르투스(Albertus Adam Chmielowski, 또는 알베르토)는 가족 소유의 부동산 관리를 위해 농업을 공부하였다. 젊어서부터 정치에 관여했고, 17세 때에는 폭도들과 싸우다가 다리를 잃었다. 크라쿠프에서 그는 인기 있고 잘 알려진 형편이 좋은 예술가였다. 정치와 예술에 대한 그의 관심은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인식을 갖게 해주었다. 온화하고 열정적인 영혼의 소유자였던 그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는 것에 대한 소명을 느꼈다. 그는 몇 년간의 반성을 통해 이 원의가 하느님께서 봉사에로 부르시는 성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작은 형제회 제3회에 들어가 알베르투스라는 이름을 받았다. 예술을 그만둔 그는 크라쿠프에서 극빈자들을 위한 삶을 시작했다. 1887년 그는 설립자의 이름을 따서 알베르토회 또는 그들의 거친 회색 의상으로 인해 회색 형제회로도 알려진 가난한 이들의 종인 작은 형제회 제3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1891년에 여자 제3회(회색 자매회)를 설립했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과 집이 없는 이들을 위해 음식과 쉼터를 제공하였다.

   성 알베르투스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재앙은 불쌍한 형제자매들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그는 ‘가진 이’들이 ‘가지지 못한 이’들을 무시하고 그들로부터 떨어져 지내며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보살피도록 방치했다고 비판하였다. 훗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가 된 카롤 보이티야(Karol Wojtyla)는 1949년에 성 알베르투스에 관한 유명한 연극의 대본을 썼는데 1997년에 ‘우리 하느님의 형제’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1916년 12월 25일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 사망한 그는 1983년 6월 2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크라쿠프에서 복자품을 받았고, 이어 1989년 11월 12일 같은 교황에 의해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되었다.
 
 
 
♬Lord’s Prayer - Gregorian Chant
 
 
[출처-명동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