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혜화동성당-유래

띨빡이 2009. 4. 19. 13:17

평 일 미 사 :  

 

성 베네딕또가 혜화동에서 철수하던 1927년 10월 7일, 제8대 서울교구장 뮈뗄 민 대주교는
종현 본당으로부터 혜화동 일대를 분리하여 새 본당을 신설하니, 혜화동 본당은 약현 본당(1893년 창설)과 종현 본당(1898년 창설)에 이어 서울의 세번째 본당으로 탄생하였다.

이렇게 본당수가 적을 때였으므로 신설 혜화동 본당의 관할구역은 매우 넓었다.

남으로는 동대문밖, 서쪽으로는 광희문 밖, 북쪽으로는 종로 3가를 경계로 동소문에 거쳐 그 이북 지방을 관할하는 실로 광대한 지역이었다.

서울을 벗어나서는 경기도 광주군을 비롯하여 양주군, 고양군의 3분의 1, 용인군 일부가 혜화동 본당 관할지역에 속했고 이 지방에는 많은 공소들이 설치되었다.


행정상의 관청을 따서 본당의 정식명칭은 [혜화동 본당]이었지만 [백동(柏洞) 본당]으로도 많이 불리었다. 현재도 연로한 성직자들이나 교우들이 혜화동 본당보다는 백동 본당으로 즐겨 호칭하리만큼 [백동 본당]이란 속칭은 일종의 애칭으로 오랫동안 전해오고 있다.

백동의 유래 :  

 

백동(柏洞=俗語로는 柏洞=잣골)이란 동명(洞名)은 일찌기 태종조의 공신 조은이 이곳에 잣나무를
많이 심고 그 잣나무 사이에 백림정(柏林亭)을 짓고 지낸데서 유래하였다.

혜화동의 유래 :  

 

혜화동이란 동명은 지금의 혜화동에서 삼선교로 넘어가는 고개에 있던 혜화문(일명 동소문)에서
유래한 것이다. 초기시절의 백동본당 교우들은 이 혜화동(동소문)을 통하여 성당 출입을 빈번히
하였다. 따라서 이 성문의 교회사적 가치도 매우 중요하다.

혜화문의 유래 :  

 

서울 성곽에 만든 4대문 4소문중의 하나로서 혜화동 고개에 있던 동쪽의 작은 문으로 동소문
이라고도 한다. 이 문의 2층 누각 천장에 봉황을 그리었는데 이것은 문밖에 새의 피해가 많았으므로
그것을 막기 위하여 새의 왕인 봉황을 그렸다 한다.
다른 문루에는 모두 용을 그리었는데 이곳만은 봉황을 그린것이 특징이었다. 이 성문을 처음으로
세운 태조때에는 홍화문이라 이름하였으나 성종 14년(1483년)에 건축한 창경궁의 정문을 홍화문이라
하였으므로 그의 혼돈을 피하여 중종 6년(1511년)에 혜화문으로 고치고 선조 16년(1816년)에 증수
하고 1939년에 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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