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깃든 밥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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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희 선생은 본래의 생명력과 색깔과 모양을 망가뜨리지 않고 먹으려면 시장이 아니라 밭으로 가면 된다고 말한다.(사진/도서출판 샨티 제공) |
두 번째 제안한 요리 역시 자연과 연결시켜주는 좋은 매개가 된다고 말합니다. 이 음식은 어디서 왔을까, 어떻게 길러졌을까 등을 생각하고 느끼면서 만드는 요리는 지구와 깊이 접촉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웰빙’이나 ‘슬로라이프’ 같은 말도 ‘걷기’와 ‘요리’, 이 두 가지에서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나는 이십여 년 넘도록 맛있고 화려한 요리를 만들고 멋진 요리상을 차리는 일에 몰두해 살아왔지만 이제는 다듬고 난도질하고 볶고 지지고 삶는 일을 최소화하려고 해요. 가장 맛있는 요리는 본래의 생명력과 색깔과 모양을 망가뜨리지 않고 먹는 것이고, 그런 음식을 찾기 위해서는 시장이 아니라 밭으로 가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거든요. 이십 년 요리사라는 긴터널을 지나 내가 찾은 ‘참맛’의 저장고는 하늘이 차려주신 ‘밭’이라는 밥상입니다. 이미 차려진 밥상이 있으니 손님이 많아도 내 할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아요.
부산 철마산에 살던 시절, 일 년에 한 번씩 음악회를 열 때도 백 명이 넘는 손님들이 찾아오곤 했는데, 거친 주먹밥과 통팥시루떡, 찐 감자와 옥수수, 생두부와 생채소 그리고 된장과 토마토만으로도 풍성한 식탁이 되곤 했어요. 대단한 요리도 없는데 다들 맛있다고 하면 내가 물어보지요. “뭐가 제일 맛있었어요?” 그러면 하나같이 “밥이요!” 하고 대답합니다. “왜 밥이 맛있었을까요?” 다시 묻습니다. 이러저러 답이 나오지만 내 대답은 간단해요. “반찬이 적어서 그래요!”
사실 반찬이랄 것도 없지요. 반찬이 따로 없다보니 밥을 먹을 때는 밥만 먹게 되고, 두부를 먹을 때는 두부만, 감자를 먹을 때는 감자만 먹게 되기 때문에, 그 하나하나의 고유한 맛과 만나게 됩니다. 순수한 그 맛을 알게 되는 거지요. 이런 맛있는 음식을 식탁에 올리기 위해 평소에도 따로 요리할 게 없으니 시간은 무척 여유로워집니다. 이 여유로운 시간에 뜨겁게 달군 돌멩이를 끼고 앉아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옷을 짓습니다. 그렇게 만든 옷의 가벼움과 편안함은 한번 누려보면 결코 다른 식의 삶과 바꾸고 싶지 않을 정도죠. 생활 속의 모든 것이 정리되고 단순해집니다.
이번 연재에서 소개하는 요리들은 요리와 함께 살아온 지난 삼십 년의 삶 속에서 추리고 추린, 일종의 커리큘럼 같은 것입니다. 서로 잘 어우러지는 과 색, 재료와 영양, 요리하는 시간 등을 고루 안배하여 만들어놓은 세트 상차림이지요. 요리법을 소개하기 전에 상차림 하나하나마다 왜 그렇게 세트를 이루게 되었는지,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어 꾸민 상차림인지 설명을 곁들였습니다. 읽고 요리에 들어가면 조금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내가 만든 대로 짝을 이루어 한 상을 차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두 가지 반찬이 빠질 수도, 더 들어갈 수도, 또 다른 재료를 사용해서 창조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혀가 아니라 지금 내 몸이 원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잘 살펴서 즐겁게 그리고 정성 들여 준비한 뒤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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