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남서부 안달루시아 지방 카디스 주의 주도이자 주요해항
대서양의 카디스 만으로 뻗어 있는 좁고 긴 반도에 자리잡고 있다.
둘레길이가 9.5~11㎞이다. 바다로 에워싸여 있는 이 도시는 벽을 세워 바다로부터 시가지를 보호하고 있으며,
육상 출구가 하나밖에 없다.
일찍이 BC 1100년에 티레에서 온 페니키아 상인들이 세운 가디르('둘러싸인 곳'이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지며,
BC 501년경 카르타고인들에 의해 점령되었다. 1980년 이전에,
그리고 1980년에 따로 떨어진 두 지역에서 페니키아의 석관(石棺)들이 발견되어
이 도시의 페니키아 기원설이 신빙성을 얻게 되었다.
제2차 포에니 전쟁이 끝날 무렵 이 도시는 로마에 저항 없이 굴복했고 그때부터 가데스라고 불리면서 꾸준히 발전했다.
1980년 근교 포폴로에서 발견된 로마극장은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잘 보존된 것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5세기에 서고트족에게 파괴당했으며 711년부터 무어인들이 항구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하고 항구를 자지라트카디스로 개칭했다.
1262년 카스티야의 알폰소 10세가 무어인들로부터 이 도시를 탈환하고 재건했다.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면서 카디스는 스페인 보물 함대의 모항이 되어 새로이 번영을 누렸다.
16세기에 바르바리 해적선들의 잇단 습격을 물리쳤으나,
1587년에는 영국의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이 지휘하는 함대가 항구에 정박중이던 선박들을 불태웠다.
1797~98년에 영국군에게 봉쇄당하고, 1800년에 폭격당했으며 1810~12년에는 프랑스군에게 포위되었는데,
이때 카디스는 나폴레옹에게 점령되지 않은 스페인 전지역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코르테스(스페인 의회)가 소집되어 1812년 3월의 자유 헌법을 발의했으며,
후에 이 헌법은 1820년 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유명해졌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스페인이 식민지를 잃음에 따라 이 도시의 무역활동이 타격을 입었고 이후에는 옛 지위를 되찾지 못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입은 피해와 낙후된 항만 시설이 도시의 쇠퇴를 가속화시켰다.
1900년 이후 부두지대 건축물들이 상당히 개선되었고 복구사업이 꾸준히 이루어졌다.
스페인 내란(1936~39)의 발발과 거의 동시에 국가주의자들의 수중에 들어가 스페인령 모로코로부터 증원군이 들어오는 중요한 창구 역할을 했다. 1947년에는 해군 무기 창고의 폭발로 큰 피해를 입었다.
공업 발전은 다소 부진하지만, 육상에는 중요한 해군 및 상업용 조선소들과 여러 공장들이 있으며 바다에는 참치 어장이 있다.
주요 무역항으로서 이 도시를 통해 수출되는 품목은 헤레스데라프론테라에서 나는 셰리주를 비롯해 포도주 및 소금·올리브·무화과·코르크, 그리고 염장한 어류 등이며,
석탄·철·기계류·목재·곡물·커피·기타 식료품 등이 수입된다.
많은 선박들이 기항하며 승객 운송도 많다.
부근에 군용 비행장과 스페인-미국 공군기지가 있다.
유서 깊은 건물로는 본래 카스티야의 알폰소 10세(1252~84)가 지었으며
1596년 이후 재건된 옛 대성당과 작곡가 마누엘 데 파야(1876~1946)의 무덤이 있으며,
예술품들이 많이 수집되어 있는 바로크 양식의 대성당(1722 착공, 1838 완공)이 있다.
그밖에도 산세바스티안 성(城)과 산타카탈리나 성, 많은 박물관들, 도시 중앙의 신호탑인 유명한 토레데비히아(30m) 등이 있다.
인구 : 시 133,363(2001), 대도시권 400,157(2001).
[출처-다음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