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교

백양사 유나 지선스님

띨빡이 2009. 7. 24. 19:25

 

두 번의 대 수술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스님은 맑고 밝아 보였다. ‘방하착’의 결과일까. 수술 직후 시작한 매년 두 차례의 안거를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있다. 올해가 10년째다. 





“출가수행과 사회운동은 둘이 아니다” 


  위대한 버림ㆍ위대한 정진ㆍ위대한 회향

  세계사에 없는 부처님의 결단이 버팀목

  투병 후에도 10년째 매년 두 차례 안거



지선스님은 1980~1990년대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섰던 출가수행자다. 6월항쟁이 절정에 달했던 1987년 6월10일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후보 지명 무효 선언문을 낭독하면서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종정사서실장, 중앙종회의원, 교구본사주지, 불교정토구현전국승가회 의장 등 수행공동체와 사회현장을 넘나들던 스님이 사실상 사회활동을 줄인 것은 1999년이다. 총무원장 경선직후 결제에 들어가 매년 두 차례 안거를 한 번도 빠트리지 않았다. ‘6월항쟁기념사업회 상임이사장’ 이외의 모든 사회활동은 멈추고 고불총림 백양사 유나로 주석하고 있다. ‘수행과 현실참여는 동시에 가능한 것인가?’ 출가재일을 보름정도 앞둔 지난 2월16일 장성 백양사 노석산방(老石山房)에서 현장감 넘치는 법문을 들었다.

어떻게 하면 세상이 변하나.

“세상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말입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하는 것입니다. 나도 이렇게 조용히 있으니 세상이 시끄러운데도 조용해 보이더라고. 내가 느꼈어요. 내가 편하니 세상이 다 편하다는 생각이 들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용산참사 등. 국가·사회적 사건사고가 즐비한 데도 정말로 편안하다는 말인가?

“어떻게 마음이 편하겠어. 늘 미안하고 죄송하지. 내가 쉬니까 세상이 쉰다고 하는 것은 본질적인 얘기지. 현상적인 면에서는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우니까 상대적으로 편하게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미안하지.”

스님은 대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 특히 스님은 1999년 봄에는 위암 수술을 마친 후 조선불교도연맹 초청으로 국내 스님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한 데 이어 티베트 성지순례를 통해 그동안의 재야활동으로 소홀했던 참선수행에 매진할 것을 부처님 앞에 약속했다. 귀국 후 의외의 상황에서 총무원장 경선을 치르며 큰 경험을 얻고 곧바로 선방으로 향했다. 집도했던 의사가 최소 2년은 푹 쉬었다 가라고 만류했지만 듣지 않았다. 이번 하안거 결제에 들어가면 만 10년 동안 매년 두 차례의 결제를 계속하게 된다.

“나이 더 들기 전에 수행하다 죽어야 한다. 재야활동은 사회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고 부처님 문중에 들어와 50대까지 살았으니 이제는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확신이 있었다. 6월항쟁으로 인한 감옥에서의 독방생활도 큰 경험이 됐다. 교도소 들어갈 때 ‘부처님께서 이제 정신 차리고 정진 한 번 해보라고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하고 밥 먹고 운동하는 시간외에는 참선을 계속했다. 느낀 것도 많았다.

“사람은 절벽에 서 있는 것처럼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수행이 잘 돼요. 인생이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인가.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처절할 정도로 고민할 때 발심이 크게 되는 것입니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그 때 그 마음으로 용맹정진하면 얼마가지 않아 깨닫는 거예요.”

대의심ㆍ대분심ㆍ대신심이 바탕이다. 스님은 ‘부처님은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니다’고 한다.

“부처 佛(불)자가 사람 人(인)변에 말 弗(불) 입니다.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니고.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이에요. 부처님의 80년 생애를 보며 내가 청춘을 바쳐서 지금도 이렇게 불교에 몸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할 때가 있어요.

첫째가 ‘위대한 버림’. 늙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자기가 왕이 되는데 왜 출가를 하겠습니까? 모든 기득권과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한 것이 위대한 결단입니다. 두 번째가 그렇게 호화로운 곳에서 고생 없이 살던 사람이 하루 이틀도 아닌 6년간 설산고행 한 그 ‘위대한 정진’, 그 다음 도를 깨달아 성자가 되셨잖아요. 중생계로 오셔서 포교하다 길에서 돌아가셨단 말이죠. 그 ‘위대한 회향’ 이 세 가지가 내가 부처님을 모시고 불교에 몸담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 위대한 성자가 돼서도 세상을 향해 ‘나를 믿으라, 안 믿으면 지옥 간다, 구원을 못 받는다’는 식으로 군림하는 신(神)이 된 게 아니라 자상한 부모님처럼 중생을 위해 길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포교하셨습니다. 당신이 은둔하고 도피하려고 출가한 것이 아니었어요.”

출가의 의미, 중생계의 모든 고민과 해법은 3000년 전이나 지금도 똑같다. “부처님 법대로 살면 된다”는 것이다. 과학문명이 발달해서 우주에 이 지구만한 세계를 하나 더 만들어 이사를 간다 해도 탐.진.치 삼독(三毒)을 가진 중생이 그대로 가니 그 곳에서도 온갖 모순과 비인간적 일들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능엄경>, 달마스님의 ‘혈맥론’에서 말한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 네 가지 수행방법에 입각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스님은 강조했다.

“첫 번째가 보원행(報寃行). 원망하지 말라. 이 세상 모든 것은 자기 인과에 의해 생겨난 일이니 증오심과 적개심을 가지지 말라. 두 번째가 수연행(隧緣行). 희비애로와 모든 고통은 인연 따라 일어나는 것이고 그 인연은 실체가 없는 것임을 깨달아 오직 도를 깨닫는 길로만 나아가라는 말입니다. 세 번째는 무소구행(無所求行). 모든 것은 무상한 것이니 구하려 하지 말라, 구하려 하는 것은 모두 나에게 고통을 줄뿐이니 마음 밖에서 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네 번째는 칭법행(稱法行)이라. 부처님 가르침대로 수행하며 살라는 말입니다.”

출가수행자든 재가신자든 참선수행해서 일상생활 속에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스님이 말하는 그런 삶이다.

“지식은 살아가는 데 자위하고 해석하고 해명하는 데 그치지, 실제상황에서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습니다. 경제위기가 왔는데 해결돼요? 경제위기는 탐욕을 끊어주는 데서 해결되는 것입니다. 탐욕을 끊고 나눠가지면 돼요. 가진 자 아는 자가 나눠 갖지 않고 헌신하지 않는 사회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지식이 됐든, 재물이 됐든, 권력이 됐든 가진 자가 나눠가져야 합니다.”

출가는 범부중생의 온갖 고통을 극복하고 ‘참 자기’와 만나는 첫걸음. 발심출가가 됐건 동기에 의한 출가가 됐건 출가는 분명 위대하고 축하받아야 할 일이다.

“출가는 인간이 부처가 되는 첫걸음임과 동시에 중생과 부처가 하나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인류역사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불법(佛法)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만약 일생일대에 불법을 못 만났다면 신들의 노예가 되어서 생사윤회를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불법을 만남으로써 생사윤회 해탈의 길을 배웠고, 부처님도 일생에 있어 가장 위대한 일도 중생을 만난 것입니다. 그게 아니면 부처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게 다 출가를 통해서 이루진 게 아닌가. ‘내가 부처’라는 것을 믿고, 부처님 가르침을 의심 없이 믿고 실천해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는 모순, 업. 그것 또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노력하면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이 관건이다. 수행과 사회활동은 하나인가 둘인가? 우문(愚問)으로 남았다.





 

 지선스님은 …


 백양사 주지시절 고불총림 복원


1946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1961년 장성 백양사에서 석산(石山)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법명은 지선(知詵). 백양사 운문강원 등에서 공부를 계속하다 1972년 전 종정 서옹스님을 법사로 건당(建幢)했다. 법호는 학봉(鶴峰). 1976년 이후 영광 불갑사 주지, 종정 사서실장, 중앙종회의원, 제23교구본사 관음사 주지, 광주 문빈정사 주지를 역임했다. 제18교구본사 백양사 주지 소임을 보며 고불총림을 복원, 서옹스님을 방장으로 모셨다.

1984년 민족.민주불교 운동에 나선 이후, 민중불교운동연합 지도위원,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부의장,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민족자주.통일 불교운동협의회의장,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공동의장, 불교정토구현 전국승가회의장, 민족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공동의장, 전국불교운동연합 상임의장, 실천불교전국승가회의장, 5.18기념재단 이사,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 공동의장, 조계종 개혁회의 상임부의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대중아 물이 거꾸로 흐른다>, <여래의 깃발>, <아름다운 그 이름 사람이어라>, <세간과 출세간>이 있으며, 고암.서옹 종정으로부터 공로 표창과 공로패를 받았다.

‘6·10민주항쟁기념사업회 상임이사장’ 이외의 사회활동을 접고 고불총림 백양사 유나로 주석하고 있다.



백양사=김선두 기자 sdkim25@ibulgyo.com

사진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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