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피아골계곡에 못 미쳐 연곡사가 있다. 울타리가 없어 세속적인 절이다. 혼자서, 답답한 마음을 풀어놓고 한나절 그저 앉아 있기에 그만이다. 연곡사는 신라 진흥왕 4년(543)에 화엄사를 세운 연기조사가 창건한 사찰로 전해지나 확실하지 않다. 유적으로 미루어 보아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연곡사는 사찰보다 부도가 더 유명하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연곡사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부도들의 축제를 고이 간직하고 있어서 지리산 옛 절집의 마지막 보루라 할 만하다”고 했다. 법당 뒤편으로 20m쯤 떨어진 산언덕에 있는 동부도(국보 제53호)는 완벽한 형태미와 섬세한 조각장식의 아름다움으로 ‘부도중의 꽃’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팔각기단 연화받침에 평면이 네모꼴인 지대석 위에 8각 2단의 아래 받침대 돌을 얹었는데 구름 속의 용과 사자가 장식되어 있다. 동부도 앞에는 보물 제153호인 동부도비가 있는데 고려 초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비석의 몸체 부분이 없어지고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다.
대적광전에서 북쪽으로 약 150m쯤 숲 속에 있는 북부도(국보 제54호)는 4각형의 지대석 위에 구름무늬가 조각된 8각형의 받침돌을 놓고 그 위에 연꽃무늬를 새긴 간석을 얹혔다. 8각 탑신의 각 면은 문짝, 향로, 사천왕상을 장식했다. 2점의 국보 외에도 연곡사에는 보물이 4점이나 있다.(동부도비는 위에서 언급) 법당에서 우측으로 5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삼층석탑은 3층 기단과 3층 탑신부를 갖추고 있으며 통일신라 말기나 고려 초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경내에 있는 현각선사탑비는 비석의 주된 부분(비신)은 없어졌고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귀부)과 뿔 없는 용의 모양만 새긴 이수만 남아 있다. 소요대사부도라 불리는 서부도는 경내에서 서북쪽으로 약 100m 떨어진 산비탈에 위치하고 있다. 다른 2기의 부도에 비해 형태나 꾸밈은 아름답지 못하나 위, 아래 각 부분의 비례가 안정되며 기품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