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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大三美의 고장 구례-네이버캐스트

띨빡이 2009. 6. 30. 22:35

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이 낳은 수려한 자연환경의 고장이다. 봄이면 섬진강 연안도로에 화사한 벚꽃, 여름이면 계곡마다 짙은 신록, 가을이면 붉게 타는 만산홍엽, 겨울에는 순백의 하얀 눈꽃이 만개한다.

 

 

화엄사(華嚴寺)를 찾았다. 건물의 웅장함에 탄성이 절로 난다. 빛 바랜 단청 목조건물, 이끼 묵은 돌탑에서 세월의 진득함이 묻어난다. 바람이 처마 끝을 스치자 풍경소리가 바람의 방향을 따라 파문처럼 퍼진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고() 최순우씨는 화엄사를 두고 “고요와 청순의 아름다움이 지리산 깊은 산 속에 맥맥히 넘쳐흐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544)연기조사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절 이름은 화엄경(華嚴經)의 두 글자를 따서 붙였다.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일직선으로 배치된 여느 사찰과 달리 모든 건축물이 태극 형상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차례로 지나면 보제루(普濟樓)에 이른다. 다른 절에서는 루를 통과하여 대웅전에 이르는데 반해 1층의 기둥 높이를 낮게 만들어 옆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보제루를 끼고 돌면 넓은 마당이 나오며, 대웅전과 각황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당에는 동·서 두 개의 탑이 사선방향으로 보이며 동쪽 탑의 윗부분보다 한 단 높은 터 위에 대웅전이 있고, 서쪽 탑의 위쪽엔 각황전이 자리하고 있다.


 

국보 제67호인 각황전은 목조 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웅장한 느낌을 준다. 밖에서 보면 지붕이 2층집으로 보이나 안에 들어가 보면 단층이다. 더구나 6개의 거대한 기둥이 버티고 서 있는데, 모두 어른 2명이 맞잡고 팔을 벌려야 겨우 안을 수 있는 굵기다. 각황전 앞에는 국보 제12호 지정된 석등이 있다. 높이 6m가 넘는 거대한 석등으로 전체적인 모습은 하대의 폭에 비해 석등 자체가 기단부 위에 얹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각황전 옆으로 난 108계단을 오르면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이 나온다.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며 세운 탑이란 전설이 있다. 탑은 2층 기단인데, 상층 기단을 네 마리의 사자로 대치했다. 하층 기단 면석과 1층 탑신에는 인왕상, 사천왕상, 보살상 등 각종 부조상을 새겼다.

 

 


문척면 사성암(四聖庵)을 찾아가는 길. 이전에는 오산(531m) 등산로를 통해서만 겨우 갈 수 있었으나 최근에는 사성암 바로 밑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다. 도로가 끝나는 곳, 오산 바위 벼랑 사이에 암자가 박힌 듯 걸려 있다. 절묘한 배치에 입이 딱 벌어진다. 벼랑에 걸리고, 바위틈을 파고들어 어느 것 하나 온전하게 보이는 건물이 없다. 사성암에는 여느 사찰과 달리 넓은 마당이 없다. 대신 손바닥만한 마당 사이로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진다. 좁은 계단을 오르면 수령 600년이나 된 귀목나무를 비롯해 소원바위, 지장전, 삼신각, 도선굴이 연이어 눈을 붙들어 맨다. 소원바위는 하동으로 땔감을 팔러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내를 잃은 슬픔에 숨을 거둔 남편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암자 뒤로 돌아가면 섬진강을 끼고 도는 구례, 곡성 들판이 한눈에 펼쳐진다.

 

반대편 돌계단을 올라 약사전에 들어서면 유리창을 통해 원효대사가 바위에 손톱으로 새겼다는 마애여래입상을 볼 수 있다. 25m의 기암절벽에 왼손에는 중생을 위해 약사발을 들고 있다. 약사전에서 뒤를 돌아서면 물뱀이 논을 가르듯이 굽이굽이 흘려가는 섬진강이 눈에 들어온다. 높은 봉우리 사이로 조그마한 들판을 끼고 묵묵히 흘려간다.

 

 

지리산 피아골계곡에 못 미쳐 연곡사가 있다. 울타리가 없어 세속적인 절이다. 혼자서, 답답한 마음을 풀어놓고 한나절 그저 앉아 있기에 그만이다. 연곡사는 신라 진흥왕 4(543)에 화엄사를 세운 연기조사가 창건한 사찰로 전해지나 확실하지 않다. 유적으로 미루어 보아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연곡사는 사찰보다 부도가 더 유명하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연곡사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부도들의 축제를 고이 간직하고 있어서 지리산 옛 절집의 마지막 보루라 할 만하다”고 했다. 법당 뒤편으로 20m쯤 떨어진 산언덕에 있는 동부도(국보 제53)는 완벽한 형태미와 섬세한 조각장식의 아름다움으로 ‘부도중의 꽃’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팔각기단 연화받침에 평면이 네모꼴인 지대석 위에 8 2단의 아래 받침대 돌을 얹었는데 구름 속의 용과 사자가 장식되어 있다. 동부도 앞에는 보물 제153호인 동부도비가 있는데 고려 초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비석의 몸체 부분이 없어지고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다.

 

대적광전에서 북쪽으로 약 150m쯤 숲 속에 있는 북부도(국보 제54) 4각형의 지대석 위에 구름무늬가 조각된 8각형의 받침돌을 놓고 그 위에 연꽃무늬를 새긴 간석을 얹혔다. 8각 탑신의 각 면은 문짝, 향로, 사천왕상을 장식했다. 2점의 국보 외에도 연곡사에는 보물이 4점이나 있다.(동부도비는 위에서 언급) 법당에서 우측으로 5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삼층석탑은 3층 기단과 3층 탑신부를 갖추고 있으며 통일신라 말기나 고려 초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경내에 있는 현각선사탑비는 비석의 주된 부분(비신)은 없어졌고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귀부)과 뿔 없는 용의 모양만 새긴 이수만 남아 있다. 소요대사부도라 불리는 서부도는 경내에서 서북쪽으로 약 100m 떨어진 산비탈에 위치하고 있다. 다른 2기의 부도에 비해 형태나 꾸밈은 아름답지 못하나 위, 아래 각 부분의 비례가 안정되며 기품이 있다.

 

 

노고단(老姑壇·1507m)은 새벽녘이나 저녁 해거름에 오르는 것이 좋다. 큰 나무가 없어 한낮에는 햇빛이 직접 내려쬐기도 하거니와 지리산 10경 중에 제1경인 ‘노고운해(老姑雲海)’를 보려면 일찍 서두려야 한다. 구름과 안개가 노고단 중턱 산허리를 감돌면 대지는 홀연히 구름바다를 이루고 봉우리는 섬이 된다. 구름 위의 해는 빛나고 구름결에 반사된 햇빛은 오색영롱한 나래를 펼친다. 노고단 고개와 KBS 송신탑의 갈림길 오른쪽에 위치한 섬진강 조망대에서는 산 능선 뒤로 사라져 가는 저녁노을이 아름답고 운치 있다.

 

예전에 노고단에 오르자면 몸과 마음을 단단히 추스른 다음 산행을 해야 했다. 남원에서부터 뱀사골을 통해 오르거나, 화엄사를 시작으로 성삼재로 올라야 닿을 수 있었다. 모두 왕복 6시간 이상은 족히 걸렸다. 하지만 1988년부터 노고단 바로 턱밑인 성삼재휴게소(1090m)까지 관통도로가 뚫려 이제는 차량으로도 쉽게 오를 수 있게 됐다. 천은사에서 성삼재까지는 차로 20분 정도 걸리며 성삼재에서 1시간가량 쉬엄쉬엄 걸어가면 노고단에 닿는다. 노고단은 신라 시대 이래로 민족 신앙의 성스러운 터로 인식돼 왔지만 이후 숱한 역경을 겪었다. 일제 시대에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피서용 별장지로 이용됐으며, 1948년 여순사건 이후에는 국군 토벌대가 빨치산의 거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울창한 수목들을 불태우기도 했다. 현재는 식생 복원 추진에 따라 옛 모습을 거의 되찾았다.


 

 

피아골계곡은 노고단과 삼도봉 사이의 산주름이다. 돼지령에서 왕시리봉으로 흘러내리는 산줄기와 삼도봉에서 통곡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피아골을 이룬다. 울창한 원시림을 누비며 아름다운 수석(水石)을 감돈다. 한국전쟁 직후 <피아골>이라는 영화가 나왔던 탓으로 흔히들 한국전쟁 때 이곳에서 동족상잔의 피를 많이 흘려 피아골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사람들이 피밭을 일구어 살던 곳인 ‘피밭골’이 피아골로 변이됐다.

 


피아골은 사계절 모두 절경으로 어느 때나 인산인해를 이룬다. 봄이면 진달래, 여름이면 짙은 녹음, 겨울이면 설경.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을 단풍이 천하제일로 꼽힌다. 10월 하순경에 절정을 이루는 피아골 단풍은 현란한 ‘색()의 축제’다. ()도 붉게 타고, ()도 불게 물들고, 그 가운데 선 사람()도 붉게 물든다는 삼홍(三紅)의 명소가 피아골이다. 피아골의 현란한 풍광에 감탄한 남명 조식은 “흰 구름 푸른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가을바람에 물든 단풍 불꽃 보다 고와라/천공이 나를 위해 뫼 빛을 꾸몄으니/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까지 붉더라”라며 삼홍시를 남겼다. 반야봉(般若峰·1732m)일몰이 유명하다. 저녁 무렵 반야봉에서 보는 낙조는 서럽도록 아름답다. 태양은 시간차에 따라 산울림의 짙푸른 메아리 속에 얼굴을 파묻고 어지러운 산봉우리 너머로 사라지려 한다. 노을은 곱게 물들여져 황혼의 고요함만이 반야봉을 무겁게 감돈다. 마지막 안타까운 몸부림인양 휘황찬란한 황금빛을 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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