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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초고왕 (백제)

띨빡이 2009. 6. 15. 14:36
?~375(근초고왕 30).
백제 제13대 왕(346~375 재위).
 
개요
 
백제 최전성기의 왕으로 왕권강화와 정복사업을 통해 강력한 고대국가의 기반을 확립했다.

 
왕권강화
 
제11대 비류왕(比流王)의 둘째 아들로 계왕(契王)이 죽자 뒤를 이어 즉위했다.
즉위한 뒤 초고왕계의 왕위계승권을 확고히 해 부자상속을 확립하고,
진씨가문(眞氏家門)에서 왕비를 맞아들여 왕실 지지기반으로 삼았다.
그리고 지방에 대한 통제를 더욱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영역을 나누어 지방통치조직을 만들고 지방관을 파견했다.

 
정복사업
 
이러한 왕권확립을 바탕으로 활발한 정복사업을 벌여나갔다.
369년경 남으로 마한(馬韓)과 대방(帶方)을 복속시켜 이전까지 백제의 지배권 밖에 있던 전라도지역을 복속시켰다.
남방지역의 정복이 일단락된 후 북방으로 진출을 도모하자, 남하정책을 추진하던 고구려와 충돌하게 되었다.
두 나라의 싸움은 369년 치양성(雉壤城:지금의 황해도 배천)에서 시작되었다.
이어 371년 9월에 고구려 고국원왕(故國原王)이 침입하자 패하(浿河:예성강)에서 크게 무찌르고,
겨울에 태자와 더불어 정예 병사 3만 명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입하여 평양성에서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이로써 백제는 지금의 경기·충청·전라도의 전부와 강원도·황해도의 일부를 차지하는 강력한 고대국가의 기반을 마련했다.

 
외교활동
 
366년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신라와 동맹관계를 맺는 한편, 372년에는 중국의 동진(東晉)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리하여 동진으로부터 영동장군영낙랑태수(嶺東將軍領樂浪太守)에 책봉되기도 했다.
한편 중국이 북방민족의 침입으로 분열된 틈을 타서 요서(遼西)지역으로 진출하여 백제군(百濟郡)을 설치했다.
백제의 요서지역 진출은 요동지역으로 진출해 오는 고구려 세력을 견제함과 동시에
상업적인 측면에서 무역기지의 확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요서와 한반도, 일본지역에 자리잡은 백제계 세력들을 연결하여 고대 상업망을 형성함으로써 무역의 중심 구실을 하였다.
이러한 국제적 조건들을 이용하여 중국의 남조(南朝)문화를 들여와 문화의 질을 높이는 한편 일본에 문화를 전수해주기도 했다.
지배영역이 확대되고 통치가 안정되자,
왕실의 위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박사(博士) 고흥(高興)에게 국사 〈서기 書記〉를 편찬하게 했다
 
 
                                [출처-다음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