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교

금산사의 불교사상

띨빡이 2009. 4. 19. 12:35

 
금산사를 중심으로 불교사상적인 접근을 해보면 우선, 통일신라시대의 진표율사에 의한 금산사의 중창과 미륵전의 건립은 이 지역이 미륵신앙의 중심지가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그후, 고려 문종 때 혜덕왕사에 의해 86동 43개 암자의 대가람으로 중수되었고, 조선시대에 마침내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부처와 보살들을 모두 수용한 대적광전을 세우게 되고 한국불교의 특징인 통 불교적 경향을 반영하기 시작하였다.

금산사는 대적광전에 화엄의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좌우에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의 삼신불을 봉안하여 정토사상의 연화장세계를 그리고 있다. 또한 금산사는 청정한 불국토에 가기위해서 자기완성과 이웃구제의 원을 세워 끊임없이 정진하는 보살도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는 사찰이며, 1700년대에는 환성지안스님에 의해 수 천명의 신도가 참여한 화엄대법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사회가 안정되었을 경우에는 십선을 닦아 도솔천에 오르려는 미륵상생신앙이 발전하였고 사회가 불안정하면 미륵보살에 의해 구원을 기원하는 미륵하생신앙이 발전하게 된다.
일제시대가 되면서 우리 민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전면적인 위기에 처해 있었다.
민중에 의한 미륵신앙은 하생신앙을 토대로 한 새로운 종교가 일어나게 되었으며 일제치하에서 우리 민족에게 애환을 달래주고 희망을 심어주는 구심점 역할도 했었지만, 순수한 미륵신앙에서 벗어난 혹세무민하는 종교활동으로 변질되어 나타나 사회에 많은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1960년대 태공월주스님에 의해 미륵사상과는 거리가 먼 의사 미륵신앙이 번성하여 사회적 폐단이 이는 것을 보고 불교 본래의 자세로 되돌아갈 필요성이 제기되어 1966년 `미륵정심회'를 조직하였다. 태공월주스님이 그의 제자인 도영, 도법, 평상, 원행스님 등과 함께 십선행을 권장하며 “미륵 바르게 알기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미륵신앙을 표방한 몇몇 신흥종교들이 정통의 미륵신앙에서 벗어나 있는 현실을 보면 심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이트 펌 게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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