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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 및 선무도의 전래(傳來)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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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랑에 끼친 선무도의 사상과 수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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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찾아 자연과 접하며 국토에 대한 애착심과 호연지기를 익히고 교양과 무예를 수련하였으니 사찰이 곧 그 역할을 한 수도장이며 승려들이 오늘날의 교관과 같은 임무를 수행했었다고 합니다. 특히 함월산, 기림산는 화랑도들의 주된 수도장으로써, 크게 활용되었으며 그 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승병들이 주석했던 대표적인 호국도량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화랑도는 불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고승대덕들로부터 교학과 무술을 배우며 장래 국가에 재목으로 성장하여 훗날에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삼국사기> 이러한 불교 호국 사상의 수호를 위해 승려들 개개인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련이나 선무도에서 말하는 무술적인 동공을 평소에 연마해 왔기 때문에 유사시에 승군으로 조직되어 참전이 가능했을 것입니다.<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사전> 이러한 전통의 계승이 유학을 신봉한 조선시대 성리학자들과 조정에 의해 불교가 탄압받는 상황 속에서도 조선말기 갑오경장(1894)때 승군제도가 폐지 될 때까지 이루어져 왔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불교탄압에 의해 그리고 곧이어 닥쳐온 일제 식민지라는 시대적 상황때문에 그 명운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암울하였으며 일제의 한국 전통 문화 말살이라는 정책아래 선무도는 그 명맥을 감추고 승가의 선승들에 의해 비전되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서 양익 큰스님께서 흩어진 불교 관법수련을 한테 모으고 체계화하시어 이를 승가에만 전수하기에 이르셨다. 1970년대 양익 큰스님을 스승님으로 모시고 법을 전수받으신 설적운 대금강문 문주스님께서 일반 대중 포교에 큰 서원을 세우시고 불교금강영관 수련법을 현대적 의미인 선무도로 개칭하시고 대중들에게 널리 가르침을 베푸시어 많은 수련생과 지도자를 배출하였습니다. 또한 선무도의 세계적인 홍포와 전문지도자를 배출하기 위한 선무도 대학을 설립 중에 있으며 현재 한국의 10여 개 대학에 특강 및 교양과목으로 개설되어 있으며 사단법인 세계 선무도 협회 산하에 국내외 약 20여 개의 지원/지부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