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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뉴슨-네이버캐스트

띨빡이 2009. 11. 5. 07:06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라는 수식은 좀 자의적이긴 하다. 올림픽 게임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많고 다양한 디자이너들에 순위를 매길 수 있을까? 하지만 순위의 진위를 따지기 전에 이미 그의 디자인이 세계적으로 어떤 위상을 가지는지 짐작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세계 3대 디자이너인지 아닌지 법적으로 확인할 길은 없으나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마크 뉴슨(Marc Newson)은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라있는 것이다.

 

대개의 훌륭한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전통에 젖줄을 대면서 개개인의 창의력과 문화적 깊이를 동시에 증대시킨다. 하지만 마크 뉴슨은 자신이 디자인 전통이 일천한 호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오히려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만약 이탈리아에서 디자인을 공부하였다면 에또레 소사스(Ettore Sottsass)나 마리오 벨리니(Mario Bellini)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생했을 텐데, 호주에서 태어나고 거기서 보석과 조각을 공부한 덕에 자신만의 고유한 디자인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국적을 더듬을 수 없는 그의 디자인들을 보면 일견 옳은 말이다. 게다가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일본이나 유럽 등지를 돌면서 살았기 때문에 특정한 문화권에 가둘 수 없는 국제적인 성격을 가졌다. 심지어는 우리나라에서도 잠깐 지냈다고 하는데, 그래서 마크 뉴슨의 디자인에서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일본의 디자이너들의 디자인에서 느낄 수 있는 전통의 무게 대신 본인의 개성만이 투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현재의 화려함은 획득하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오래 동안 지속될 수 있는가에 있어서는 역시 전통의 부재라는 문제가 언제라도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전통을 뺄 경우 디자인이 절대적으로 기대게 되는 것은 새로움, 그리고 첨단의 기술이다. 마크 뉴슨 역시 창의성을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우는 디자이너이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기술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1986년에 만든 미래주의적 소파 ‘록히드 라운지(The Lockheed Lounge)’ 를 보면 그의 관심이 일찌감치 기술적인 부분에서 시작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번쩍번쩍 빛나는 물체는 다름 아닌 의자인데, 최근에는 소더비 경매에서 무려 22억에 낙찰되어 화제가 된 디자인이다. 플라스틱으로 형체를 만들고 그 위에 알루미늄 판을 하나씩 덮어서 미래적인 형상을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차가운 금속재료가 부드러운 곡면에 붙어있는 모양이 비행기를 연상케 한다. 의자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대상에서 첨단기술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새롭다. 일상과 첨단의 이런 간극이 던져주는 미학적인 충격과 쾌감이 바로 마크 뉴슨의 디자인이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이유라 할 수 있다. 그의 디자인은 이렇게 지극히 일상적인 사물에 인류의 기술적 성취를 투사하거나, 기술을 추상화함으로써 대단히 파장이 높은 심미적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어찌보면 기술의 과잉이라고 볼 수도 있는 디자인이지만 그런 과잉을 뛰어난 조형성으로 부드럽게 커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시드니 컬리지 오브 아트에서 보석과 조각을 전공한 그의 경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며, 조각적인 형태에 공예적 기법이 응용된 모습에서 그의 기술 중심적인 디자인 성향을 짐작케 한다.

 

빛의 신 아폴로로부터 영감을 얻은 랜턴 역시 마크 뉴슨의 기술 중심적 디자인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번쩍거리는 알루미늄 몸통의 차가운 질감은 이 랜턴을 핸드폰과 같은 첨단 IT제품들과 동일한 선상에 올려놓고 있다. 하지만 그의 디자인이 최첨단의 인상만 주었다면 세계적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길쭉한 원기둥 모양에, 끝부분이 둥글게 처리된 형태는 단순하지만 매우 뛰어난 조형적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크기만 좀 작았다면 장신구로서도 손색이 없다. 이처럼 마크 뉴슨의 디자인은 기술에서 출발해 마음을 감싸는 재미로 마무리된다. 

 

알루미늄 몸체로 이루어진 그의 자전거 ‘MN01’에서도 기술을 슬기롭게 사용하는 마크 뉴슨의 탁월한 디자인 세계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이 자전거의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몸체의 중심에는 거푸집으로 주조된 알루미늄 몸체가 있다. 기존의 삼각형 파이프의 구조와는 완전히 다른 모양이다. 그렇지만 알루미늄 몸체의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 때문에 견고함에 있어서는 어느 자전거 못지않다. 여기에 핸들과 안장, 바퀴, 페달 등이 기계적이기 보다는 전자제품의 부속들처럼 몸체에 바로 연결되어있다. 기존의 자전거에 비해 간단하면서도 색다른 구조다.

 

‘즈베즈도츠카(Zvezdochka)’라는 이름을 가진 나이키의 운동화도

납득할 만한 이유와 빼어난 기술의 사용으로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매력을 보여준다. 러시아의 우주선 스푸트니크호에 탔던 개의 이름을 신발의 이름으로 내세운 아이디어도 독특하지만 신발을 안에 신는 것과 바깥에 신는 것으로 나눈 구조적이면서도 기능적인 접근이 뛰어나다. 필요에 따라 겉 신(?)을 신을 수도 있고, 홀가분하게 안쪽 신만 신을 수 있다. 두 개의 신을 이렇게 짝을 지어 탈착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앞의 디자인과는 전혀 다른 모양, 다른 재료의 디자인이지만 생활 속의 친숙한 아이디어이면서도 가볍거나 단조롭지 않는 매력을 풍긴다. 이런 디자인을 창조해왔기 때문에 마크 뉴슨은 나이키 뿐 아니라 세계적인 조명회사인 플로스(Flos)와 가구 회사인 카펠리니(Cappellini), 모로쏘(Moroso) 등 유럽 최고의 업체들과 일을 하고 있으며, 1997년에는 런던으로 이주해 자신의 디자인 회사인 Marc Newson Ltd.를 설립하여 세계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기술의 새로운 사용에 능한 마크 뉴슨이지만, 앞서 살펴 본 것처럼 그의 진면목은 기술 그 자체보다는 그 기술을 처리하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의외로 그는 컴퓨터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컴퓨터로 디자인을 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항상 머릿속에서 개념을 형성하며 곧바로 이를 스케치북에 옮기는 작업을 한다. 내가 컴퓨터를 가지고 하는 일이라고는 단지 점들을 잇는 일에 불과할 것이다. 컴퓨터는 상당히 정밀한 도구임에는 틀림없지만 디자인에 있어 대상을 실제로 보고 만져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그래서 그는 디자인을 할 때도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지하기 보다는 손으로 스케치를 해가며 만드는 방법을 고수한다. 이런 의외의 장인 정신이 있기 때문에 전통의 깊이 없이도 오랫동안 식상하지 않는 매력을 창조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오늘날 모든 디자인을 컴퓨터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교훈을 던져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