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로 (고려 문신) [崔承老]
927(태조 10)~989(성종 8).
고려 초기의 문신
유교적 정치이념을 체계화하여 개혁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성종대의 새로운 국가체제 정비에 크게 기여했다
아버지는 신라 6두품인 은함(殷含)이다. 신라말 경주에서 태어나 935년(태조 18)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할 때 아버지를 따라 고려에 왔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며 글을 잘 지었다.
12세 때 태조에게 불려가 〈논어〉를 읽었는데, 태조가 매우 가상히 여겨 염분(鹽盆)을 하사하고
원봉성(元鳳省)의 학생이 되게 했으며, 안마(鞍馬)와 예식(例食) 20석을 하사했다.
이후 주로 문장과 학문 계통의 관직에 종사했다. 광종대에는 중용되지 못했으나
경종대를 거쳐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982년(성종 1) 정광 행선관어사 상주국(正匡行選官御事上柱國)이 되었다.
그해 6월 왕이 5품 이상 경관(京官)에게 봉사(封事)를 올려
시정(時政)의 득실(得失)을 논하게 하자 28조의 시무(時務)를 올렸다.
이듬해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가 되었으며,
988년에는 문하수시중(門下守侍中)이 되고,
청하후(淸河侯)로 봉해져 식읍(食邑) 700호를 받았다.
여러 차례 벼슬을 그만두기를 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989년 63세의 나이로 죽자 성종이 몹시 슬퍼하며
포(布) 1,000필, 면(麵) 300석, 갱미(粳米) 500석, 유향(乳香) 100냥 등을 내렸다.
태사(太師)에 추증되었으며, 998년(목종 1) 성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1033년(덕종 2) 대광 내사령(大匡內史令)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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