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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김녕해녀마을-네이버캐스트

띨빡이 2009. 6. 26. 17:46

“여자가 타면 재수 없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배에 태워준다는 말만 철썩 같이 믿었다. 아침 6 기상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 나왔다. 그런데 여자라서 안 된다니.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자 제주도 김녕해녀마을 한경호 어촌계장이 차근차근 설명한다. “예부터 해녀가 아닌 여자가 배에 타면 파도가 거칠어지고 그랬어요. 그래서 우리 해녀들이 다칠까 걱정이 돼~.

 


그때 “까르르~”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빼꼼 열린 탈의실 문틈으로 20여 명 해녀의 수다가 흐른다. 모처럼 물질 나갈 채비에 분주한 모습이다. 직접 해녀언니(?)들에게 촬영 협조를 구했다.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배에 올라도 괜찮단다. 그제야 푸르른 제주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옷을 갈아입은 해녀들은 하나같이 늘씬하다. 피부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하다. “미인이세요~.” 도시 아가씨의 감탄에 해녀들은 “매일 햇빛에 나가 있는데 피부는 엉망이지 뭐~”라며 손사래를 친다. 옷을 갈아입은 문경옥(49) 서김녕해녀회장이 혼자 바닷가로 향한다. 비닐로 싸맨 쌀 한 움큼을 바다에 던지더니 소주를 붓고 정성스레 절을 올린다. “물질 나가기 전에 항상 이 의식을 해요. 용왕님께 우리 해녀의 안전을 빌고, 또 해산물도 많이 잡을 수 있게 기원하는 거죠.” 해녀에게 바다는 일터이자 삶이고 또 신앙인 셈이다.

 

 

태왁, 망사리, 오리발, 수모, 수경 등 물질 도구를 한아름 안고 해녀들이 배에 올랐다. 김녕 목지코지 앞바다까지 배 위는 해녀의 수다로 꽃이 핀다. 생전 처음 듣는 제주도 사투리가 생경하지만 정겹다. 18살부터 30여 년간 물질을 해온 해녀 송금희(51)씨가 수다를 나눠준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물질 해서 돈 버는 것을 보고 자연스레 물질을 시작했어요. 바다가 아이들을 키우고 대학까지 보내줬지.” 서김녕해녀 막내는 47김명숙씨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자 이제 물질을 배울 사람이 없다. 반면 김녕해녀는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물질을 한다. 하루 서너 시간 물질과 소식하는 식사 습관이 해녀의 건강을 책임진 셈이다. 유독 팽팽한 피부도 바다가 선물한 것이다.

 

10여분 정도 배를 타고 가자 갑자기 ‘첨벙~’하는 소리가 들린다. 물에 떠서 해녀의 위치를 알려주는 태왁과 채취한 해산물을 넣는 망사리가 바다에 먼저 몸을 담근다. 곧 해녀들이 뒤를 따른다. 푸르른 바다를 유연하게 빠져나가는 모습. 인어공주가 따로 없다. 저마다 자리를 잡은 해녀는 바다 속 바닥까지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소라, 성게, 전복 등이 망사리를 채워간다. 해녀가 물질을 할 수 있는 날은 따로 정해져 있다. 만조와 간조의 때에 맞춰 파도가 잔잔한 날에만 물질을 할 수 있다. 취재를 간 날, 아직은 물이 차다. 서너 시간 물질이 끝나고 나서야 해녀들은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그래도 해산물 망사리에서 성게를 꺼내더니 노란 속살을 맛보라며 입 속까지 넣어준다. 고소한 노란 살이 입안까지 바다냄새를 퍼뜨린다. 해녀의 수고가 온몸으로 전해진다.

 

 

김녕리는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약 22km 떨어진 해안가에 위치했다. 1148가구, 38백 명이 사는 비교적 큰 바닷가마을이다. 농가에서는 마늘, 양파를 주로 경작한다. 서김녕과 동김녕을 합쳐 해녀 수는 150명 가량. 제주 마을 중 해녀가 가장 많다. 성세기당, 큰당, 궤내깃당 등 매년 해녀들이 큰 제사를 드리는 당이 마을 구석구석에 자리 잡았다.

 

김녕마을은 천혜의 자연환경으로도 유명하다. 길이 8928m로 세계 최장 용암동굴인 만장굴과 길이 745m 김녕사굴 등 천연 동굴이 땅속을 흐른다. 게웃샘물, 성세기물, 청굴물, 신수물, 영등물 등 용천수가 마을 곳곳에서 뿜어져 나온다. 현무암이 흘러 너른 평지가 된 빌레, 마그마 거품이 그대로 굳은 병풍머를, 썰물 때만 자태를 드러내는 두럭산, 액운을 막기 위해 육지와 연결된 목지코지 등 해안선을 따라가며 만나는 이국적인 풍경은 마음을 사로잡는다. 묘산봉 근처에는 레저시설이 들어섰고, 인근에 <태왕사신기> 촬영장이 생겨 관광요소가 풍부해졌다. 임문배 해설사는 “김녕마을 해안선을 따라 걷는 길을 가꿀 예정이에요. 동굴과 지하수, 바다와 민간신앙이 어우러진 김녕마을은 제주도의 큰 자랑거리가 될 거에요”라며 마을의 가능성을 점친다. 김녕해수욕장에는 벌써부터 바지를 걷어 올리고 바다에 발을 담근 사람들이 눈에 띈다. 백사장 하얀 모래가 여름을 맞이한다. 산책을 하다가 아들과 길을 걷는 평상복 차림의 해녀를 다시 마주쳤다. 마지막 김녕해녀 세대일지 모르는 그녀의 뒷모습이 노을 진 바다와 함께 아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