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직전 어느 기자와의 대담에서, 고갱은 자신이 타히티로 가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 목가적인 섬과 원초적이며 순박한 주민에게 매료당했기 때문이지요.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떠나려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새로운 것을 이루려면 근원으로,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 해요. 나의 이브는 동물에 가깝습니다. 벌거벗었는데도 음란해 보이지 않는 것은 그래서예요. (...) 떠나기 전에 샤를 모리스의 도움을 얻어 타히티 생활을 소개한 책을 펴낼 생각입니다.” 그 책의 제목이 뭐냐고 묻자 고갱은 이렇게 대답한다. “노아노아. 타히티 말로 ‘향기’라는 뜻이지요.”
1895년 6월에 파리를 떠난 고갱은 9월 초에 다시 타히티의 파페에테에 도착한다. 하지만 골절상의 후유증은 물론이고 젊은 시절에 완치되지 못한 매독의 재발로 그의 몸은 이미 크게 망가진 다음이었다. 고갱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심지어 자살까지도 시도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붓을 놓지는 않았다. 이 시기의 주요 작품으로는 새로 얻은 애인 파우라를 모델로 한 여러 점의 작품과 최후의 대작인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