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4월 16일 성녀 베르나데타 동정 / 성 베네딕토 요셉 라브레

띨빡이 2009. 4. 19. 13:36

The Stupid one

A Biography of St. Bernadette - by Dan Paulos

성녀 베르나데타 동정

St. BERNADETTE of Lourdes

Sta. Bernadetta (Bernarda), Virg

Saint Bernadette Soubirous

Santa Bernardetta Soubirous Vergine

Born: 7 January 1844 at Lourdes, France

Die: 16 April 1879, Nevers, France of natural causes; body incorrupt

Beatified :1925

Canonized :1933 by Pope Pius XI

Bernardetta = ardita come orso, dal tedesco = dared like bear, from the German

 

 

성녀 마리아 베르나데트 수비루(Maria-Bernardette Soubirous)는 1844년 1월 7일 루르드에서 가난한 방앗간 주인인 프랑수아의 여섯 아이 중 맏딸로 태어났다. 14세 때의 그녀는 번민하는 듯한 인상에다가 보통보다 작은 소녀로서 민감하나 쾌활한 기질이 있었으며. 다소 발육이 늦은 듯했다고 한다.

   1858년 2월 11일과 7월 16일까지, 그녀는 루르드의 가브(Gave) 강변에 있는 마사비엘르 바위에서 동정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체험하였다. 18 차례에 걸쳐 그녀는 매우 젊고 아름다운 부인을 보았는데, 그 부인이 자신에게 여러 가지 요구를 하였다. 이 부인이 나중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로 호칭하게 되는 동정 마리아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는 곳에는 소문을 듣고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마리아 베르나데트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그 ‘부인’을 보지 못하고 그 말씀도 듣지 못하였으나. 무슨 혼란이나 정신적인 이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 발현이 있고난 다음부터 거짓 환시가 유행병처럼 번졌으나, 교회 당국은 그녀의 체험에 대하여 올바른 자세를 견지하였다. 몇 년 후 그녀는 의심 많은 불신자들로부터 심한 고통을 받았으나, 이 모든 것을 영웅적인 용기와 품위로써 물리쳤다. 1866년에 그녀는 프랑스 느베르(Nevers)의 사랑의 자매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여기서 그녀는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위험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 일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무슨 일이오?” 이때 그녀의 대답은 “아픈 일”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35세에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성녀 마리아 베르나데트는 1925년 6월 14일 복자품에 오른 후, 1933년 12월 8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마리아 베르나데트가 시성된 것은 그녀가 성모 발현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겸허한 단순성과 그녀의 전 생애를 통해 보여 주었던 절대로 의심하지 않은 신뢰심 때문이었다.

 

 

 

성 마리 베르나데트 수비루 동정의 편지에서

(Ep. ad P. Gondrand, a 1861: cf. A.Ravier, Les  ecrits de sainte Bernadette,Paris 1961, pp. 53-59)

 

여인이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두 여자 아이들과 함께 가브 강변에 땔나무를 주으러 갔을 때 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때 목장 쪽을  바라보았더니 나무들이 전혀 흔들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동굴 쪽을 바라보니까 파란 띠에 흰옷을 입고 있는 한 부인이 서 있었습니다. 그 부인의 양쪽 발등에는 노란 장미꽃이 꽂혀 있었고 그의 묵주도 같은 노란 색이었습니다.

저는 그 부인을 바라보았을 때 착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제 눈을 부볐습니다. 그리고는 묵주가 든 제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습니다. 십자성호를 긋고 싶었으나 이마에다 손을 올릴 수가 없었고 손은 이내 아래로 뚝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부인은 자신이 성호를 그었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하려고 했습니다. 제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으나 마침내 십자 성호를 그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묵주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부인은 손가락 사이로 묵주 알을 굴렸지만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묵주의 기도를 끝마치자 환시는 사라졌습니다.

환시가 사라지자 두 여자 아이들에게 무얼 보았냐고 물었습니다. 자기들은 아무것도 못 보았다고 하면서 자기들에게 말해줄 게 있느냐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에게 흰옷을 입은 한 부인을 보았는데 누군지 모르겠다고 대답했고 그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때 아이들은 나보고 거기에 되돌아가지 말라고 간청했으나 저는 거절했습니다. 어떤 내적인 힘에 이끌리는 것을 느끼면서 일요일 날 거기에 다시 갔습니다.

그 부인은 제가 세 번째 갈 때까지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가던 날 나를 보고 보름 동안 자기에게 오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니까 사제들에게 가서 거기에다 소성당을 짓도록 청하라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부인은 제게 샘에서 물을 마시라고 했습니다. 둘러 보아도 샘이 없기에 저는 가브 강물을 마시려 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그게 아니라면서 손가락으로 샘을 가리켰습니다. 제가 가서 보니 약간의 더러운 물밖에 없었습니다. 손을 넣었지만 손으로 담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땅을 후비었더니 마침내 마실 수 있는 물이 조금 나왔습니다. 세 번은 버리고 네 번째 마셨습니다. 바로 그때 환시가 사라지고 저는 거기를 떠나 왔습니다.

그 다음 보름 동안 거기에 찾아갔었습니다. 그 부인은 월요일과 금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제게 나타나 사제들에게 소성당을 짓도록 청해 달라고 다시 부탁했고 저더러 그 샘에서 몸을 씻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저는 몇번이나 당신이 누구냐고 물었지만 그 부인은 제게 부드러운 미소를 보낼 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인은 팔을 펼치고 시선을 하늘로 향하고는 자기는 "원죄 없이 잉태된성모"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보름 동안 부인은 제게 또한 세 가지 비밀을 계시하셨고 절대로 누설하지 말라고 명했습니다. 저는 오늘까지 그 비밀을 충실히 간직해 왔습니다.(가톨릭홈에서)

 

 

 

 

성 베네딕토 요셉 라브레
St.Benedict Joseph Labre
Also known as
Beggar of Perpetual Adoration
San Benedetto Giuseppe Labre Pellegrino
(Amettes, Francia, 26 marzo 1748 - Roma, 16 aprile 1783)
Born: 25 March 1748 at Amettes, Boulogne, France
Died: 17 April 1783 at Rome
Beatified: 1859 by Pope Pius IX
Canonized: 8 December 1883 by Pope Leo XIII
Name Meaning : blessed ( = Benedict)
Benedetto = che augura il bene, dal latino 

 

 

   성 베네딕투스 요셉 라브르(Benedictus Josephus Labre, 또는 베네딕토)는 부유한 상인의 15자녀 가운데 맏이로 불로네 근교에서 태어났다. 1770-1776년 사이에 그는 수차에 걸쳐 수도회에 입회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너무도 신중하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하였다. 그런 뒤에 그는 로마(Rome)의 순례 길에 나섰는데 맨발로 구걸하면서 기도 중에 걸어갔다. 그로부터 3-4년 동안 그는 서유럽의 성지 이곳저곳을 순례했는데, 이탈리아의 로레토(Loreto), 아시시(Assisi) 그리고 바리(Bari), 스위스의 아인지델른(Einsiedeln), 프랑스의 파레이르모니알(Paray-le-Monial),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등지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어디를 가나 항상 맨발로 여행하였고, 노천이나 추녀 밑에서 밤을 새웠으며 옷은 누더기였고, 몸은 더러웠으며 음식은 문전걸식하였고, 돈을 얻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의 말 수는 적었으나 기도는 많았으며, 다른 사람들의 냉대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1774년부터 그는 로마에 머물렀는데, 낮에는 성당에서 기도로 지냈고, 밤에는 콜로세움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건강을 해쳤기 때문에 걸인 수용소를 찾을 형편이 되었다. 마침내 그는 성당에서 허물어지듯 쓰러진 후 어느 푸주한의 집에서 임종을 맞았다.

   로마의 사람들은 이 새로운 프란치스코 성인의 높은 성덕을 전혀 모르지는 않았다. 1881년 그는 그들의 성인으로 높이 받들어졌다. 성 베네딕투스 라브르는 서방 교회보다 동방 교회에 더 많이 알려진 수덕적인 성소를 받은 분이다. 그는 항상 ‘그리스도를 위하여 바보’가 된 그리스의 살로이와 러시아의 유로디비에 견줄만한 위대한 성덕을 쌓았다. 그는 또한 40시간 성체조배 신심의 전파자였다. 그는 1860년에 복자품에 올랐고, 1881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기도
오 하느님, 당신의 증거자 성 베네딕토 요셉에게
겸손에 대한 열정과 가난에 대한 사랑을 통해 당신만을 의지하게 하셨으니
그의 공로의 중재로 저희로 하여금
온갖 세상 것을 경멸하고 언제나 천상 것을 추구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출처-명동대성당]